(40) 최소국가론의 선구자 이마누엘 칸트
18세기 대부분의 나라에선 자유가 유린당했다. 정부의 압제 아래 온갖 차별과 특혜가 난무했다. 왜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존엄한지 깨닫지 못했다. 폭정 노예 빈곤만이 지배했을 뿐이다.
인류가 이런 미성숙하고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성숙한 계몽의 길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존엄을 신봉하고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라고 주장한 인물이 독일 도덕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다.
아버지가 말안장 수리공인 가정에서 자란 칸트의 도덕철학적 출발점은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은 선험적인 정신의 산물이라는 합리주의 인식론이다. 그는 인식론을 도덕철학에도 적용,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이 이미 우리 정신 속에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 기준이 정언명령(定言命令)인데,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이려면 그것이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거부된 행동은 해서는 안 될 의무가 생겨난다는 게 칸트의 설명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 증진을 위해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보편화돼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 믿을 만한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의 이익도 챙길 수 없다. 거짓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수단으로 삼아 그의 자유를 침해한다. 이로써 예외 없이 모두가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행동규칙이 형성된다는 게 칸트의 혁명적 인식이다. 정언명령 테스트는 행동이 가져올 예측된 결과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테스트는 누구든 해서는 안 될 바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행동규칙을 형성하는데, 이 행동규칙은 보편성, 행동목적을 내포하지 않는 탈목적성, 강제 계약불이행 등 특정행동을 금지하는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는 게 칸트 추종자들의 해석이다.
이런 정언명령이 지배하는 이상사회가 시장경제라는 칸트의 설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분업과 교환은 상호 간 인격 존중을 의미하는 정언명령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교환을 통해서 기업들은 고객의 목적에 봉사하고, 후자는 전자의 목적에 봉사한다. 이게 시장을 다목적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유경쟁이 도덕을 파괴한다는 주장으로 시장경제를 폄훼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칸트는 목소리를 높인다. 경쟁은 성실성 엄격성 정직성 등 도덕성을 촉진한다는 게 그의 탁견이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없으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국가주의 주장에 대해 칸트는 ‘자연의 감춰진 계획’, 즉 자생적 질서라는 말로 맞받아친다. 인간들이 제각기 목적을 추구한다고 해도 혼란이 아니라 스스로 질서가 생기고 유지된다는 게 칸트의 통찰이다. 자유가 허용될 경우 시민 공동체는 자동기계처럼 스스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도 오류가 있듯이 도덕 선택에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든 자유가 많을수록 오류가 적고 덜 파괴적이고 쉽게 수정 가능하다는 게 칸트의 설명이다. 칸트는 보호무역은 전쟁을 야기할 뿐이라고 개탄하면서 영구평화는 자유무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호소한다. 전쟁을 극복하고 모든 나라의 보편적 이득을 증진해 세계평화를 창출하는 게 자유무역이라는 그의 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칸트의 법치주의다. 도덕철학적 개념인 정언명령을 법학적으로 해석한 게 법치주의다. 이는 법이 법다우려면 특정 그룹에 대한 특혜나 차별,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내포해서는 안 되고 특정한 행동을 당연히 금지하는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 원칙을 충족하는 법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자유의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만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된 법치국가라는 게 칸트의 설명이다.
입법자가 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법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서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 신체 재산을 유린하던 시기에 칸트는 법치국가라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싸웠다. 칸트가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특정 그룹을 차별하거나 국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입법이다. 인간을 국가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자유와 존엄을 파괴하는 입법을 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격분한다.
칸트는 국가가 특정한 산업이나 그룹을 온정적으로 보호하는 정책도 강력하게 반대한다. 온정주의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합리적 존재로서 개인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시민의 행복을 명분으로 복지를 공급하는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개인들의 깨우침과 도덕의 계발을 위해서도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게 칸트의 주장이다. 정부가 자유를 침해하면 그 어떤 그룹이라도 부도덕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자유와 존엄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칸트의 위대한 사상은 최소국가이론이다. 이런 국가에서만이 과학 문화 도덕 경제도 번영한다는 게 칸트 사상의 결론이다.
오스트리아학파 시장이론에 영향
칸트 사상의 힘
이마누엘 칸트는 경제에 관심이 없는 은둔의 철학자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새로 밝혀졌다. 칸트는 거의 매일 오후가 되면 친구들과 만났는데 대부분 사업가, 상인, 은행가였다는 게 역사가들의 증언이다. 대화 주제는 주로 경제·정치 분야였는데 이를 통해 칸트의 경제 마인드가 형성됐고,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도 알게 됐다는 얘기가 흥미롭다. 그는 친구들의 회사에 투자해 많은 돈을 벌었고,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 칸트는 애덤 스미스, 흄 등 스코틀랜드 계몽 철학자들의 문헌을 두루 섭렵해 기업과 시장에 박식했다. 실제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칸트는 일평생 자기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대학에서 50마일 이상 나간 일이 없지만 그가 미친 사상적 영향만큼은 범세계적이다. 그의 인식론이 주관주의적 행동이론과 시장이론을 개발한 오스트리아학파 미제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이에크도 세상에 대한 인지는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인지틀에 좌우된다는 칸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인지틀은 고정된 게 아니라 진화 과정을 통해서 변동된다고 하이에크는 주장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은 주어져 있는데 정신이 액면 그대로 그것을 수용한다는 고전적 경험주의를 전제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오류를 밝혀낸 칸트 인식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통계나 관찰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지식은 믿지도 말라는 실증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것도 칸트 전통이라는 것이다.
도덕을 경제의 종속변수로 보는 미시경제학은 비용-효용이라는 의미의 경제적 합리성 테스트를 거처 도덕적 행위를 판단하는데, 이런 경제학을 반대하고 도덕을 경제에서 독립시켜 경제와 도덕을 이원화하는 경제학의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칸트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헌법가치로서 법치국가, 존엄성 개념을 중시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칸트 사상의 영향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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