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시장에서 五感 뽑아냈죠"

입력 2013-10-28 21:25   수정 2013-10-29 05:05

자그마한 체구에 수줍은 표정의 작가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품을 설명한다. 마치 누군가가 엿들을까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다. 머리에는 안전모를 썼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작동하다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삶은 온통 예측불허의 살얼음판이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이주요 씨(사진)의 개인전 ‘나이트 스튜디오’는 한 여성 작가의 내밀한 삶의 기록이다. 지난 20여년간 네덜란드 독일 등 해외에서 주로 활동해온 작가는 2009년부터 3년 동안 이태원 시장 초입에 처음으로 국내 작업실을 마련하고 창작에 몰두했다. 이번 전시는 그 결과물이다.

국내에 처음 정착한 작가는 새로운 거주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밤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발명에 취미가 있어 무엇인가를 만들곤 했다”는 그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작업에 몰입했다.

그런 예민한 감성을 지닌 작가에게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버려질 뻔한 폐목재 등 일상적 재료들을 수집·재활용함으로써 사라질지도 모르는 대상에 연민의 손길을 뻗치며 자신의 일상적 삶과 작품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준다.

이태원 시장길에서 벌어지는 삶의 현장을 저마다 다른 작동법의 타자기로 표현한 ‘생선장수’ ‘큰 흑인 작은 흑인’, 작가가 쓴 시를 벽면에 찍어내는 ‘낭송하는 타자기’는 작가의 경험을 표현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도구로서 이미지나 텍스트가 아닌 타자기를 부각하고 있다. 폐품처리장과 고철상에서 가져온 나무와 철물로 엮어 만든 ‘무빙플로어(Moving Floor)’는 관객이 그 위를 직접 걸으며 불안감을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아트선재센터가 네덜란드 반아베미술관,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과 공동기획했다. 작가는 이번 출품작을 이태원에 머무는 동안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공개했다고 한다. 작가이면서 작가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주요. 그의 비밀스러운 작업은 내년 1월12일까지 공개된다. (02)733-8945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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