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 21일 KT의 지배구조를 ‘A+’로 평가했다. 포스코 KB금융그룹 등과 함께 최고 점수를 준 것이다. 공교롭게 그 다음날 검찰은 배임혐의로 이석채 KT 회장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말이 배임혐의이지, 정부의 자진사퇴 압력에도 버틴 게 ‘괘씸죄’로 작용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정확히 5년 전 이맘때 남중수 당시 KT 사장도 사퇴를 거부하다가 수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던 전례가 있어서다.
대한민국 최고 우수 지배구조를 가졌다는 KT가 정권 초마다 최고경영자(CEO) 교체의 홍역을 치르는 건 아이러니다. 배경 중 하나는 KT가 ‘주인 없는 민영화’를 했기 때문이다. KT는 2002년 한국통신공사에서 민영화했지만, 뚜렷한 최대주주 없이 지분이 분산됐다. 현재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8.6%) 미래에셋(4.9%) 외국인(43.9%) 등이 혼재돼 있다.
5년마다 CEO 교체 홍역
이처럼 고른 소유분산이 지배구조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너가 없는 회사는 정부가 숟가락을 얻기에 딱 좋은 밥상과 같다. 게다가 계열사만 52개인 KT는 회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가 수백 개다. 정권 초마다 ‘공신’들에게 나눠줄 자리가 부족해 고민인 정권 입장에선 군침을 흘릴 만한 회사다.
이명박 정부 초기 낙하산으로 KT에 입성한 이 회장도 정권 주변 인사 30여명에게 자리를 나눠줬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권력 주변에서 ‘다른 자리는 몰라도 KT 회장만은 꼭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KT가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하다 보니 우수 지배구조는 기도 펴보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도 한때 외풍을 막겠다며 CEO후보추천위원회에서 외부인을 배제하고, 후계CEO 프로그램도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자신과 친한 사외이사 중심으로 재편한 CEO후보추천위는 ‘연임을 위한 꼼수’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후계CEO 프로그램은 ‘낙하산’ 중단을 우려한 정치권 외압으로 폐기됐다. 결국 제대로 된 후계CEO도 없고, CEO후보추천위도 신뢰를 받지 못하다 보니 KT 회장 인사가 번번이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낙하산 막는 장치 절실
KT처럼 오너는 없지만 세계 초일류기업이 된 회사들의 공통점은 건전한 이사회와 후계CEO 양성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 사례가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최근 방한했던 제프리 이멜트 회장도 후계CEO 양성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잭 웰치 전 회장은 1994년 취임하자 마자 10여명의 내부 후보를 뽑아 6년간 치열하게 경쟁시킨 뒤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이멜트를 후계자로 정했다. 이런 지배구조와 시스템이 있었기에 GE가 135년 동안 살아남으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모른다. 어떤 결론이 나든, 차제에 KT의 지배구조는 뜯어고쳐야 한다. 확실한 주인을 찾아주든, 아니면 정권 공신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차단 장치를 확고히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KT가 대표 기간통신사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KT와 더불어 포스코 KB금융그룹 같이 주인 없는 민영화 기업들의 진짜 ‘A+ 지배구조’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차병석 IT과학부장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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