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건호 국민은행장,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이들은 모두 금융연구원 출신이다. 세 명 다 박근혜 정부 들어 차관급과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연피아(연구원+모피아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25일 인천 하얏트리젠시호텔에서 금융연구원이 개최한 ‘언론사 경제·금융부장 및 은행장 초청 세미나’에서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기자들과 은행장들 외에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30여명과 금융위원회 간부 20여명도 나왔다. 이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척 봐도 평소 친분관계가 상당한 듯 느껴졌다.
금융연구원은 금융위의 2중대?
그럴 만도 했다.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위원들과 고시 출신인 관료들은 누가 뭐래도 엘리트다. 그런 만큼 특정학교 동문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금융연구원은 금융위원회의 용역업무도 도맡아 수행한다. 금융위가 원하는 정책의 이론적 타당성을 잘 제공하고 있어서다.(금융연구원이 ‘금융위의 2중대’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이러다보니 이들은 자주 만난다. 사석에서 ‘형님 동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위원들은 관료의 파워를 느낀다고 한다.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직접 실천했으면 하는 생각도 갖는다. 그러다보니 자꾸 ‘밖’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늘어난다. 금융연구원 출신들이 금융계에 많은 이유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연구원도 생각지 못한 부메랑을 맞았다. 다름아닌 원장 자리에 낙하산 인사가 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는 2009년 3월 6대 금융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원장으로 내정되자 금융을 전공하는 학자들조차 ‘그가 누구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금융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MB 대선캠프에서 일하다가 인수위원회에 몸담았다. 그 뒤 금융연구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그 다음인 윤창현 원장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립대 교수로 MB 대선캠프 정책자문단에서 일했던 그는 김태준 원장이 작년 임기 만료로 물러나자마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낙하산 전유물' 된 금융연구원장
정권이 바뀌고 MB 정부 때 임명된 공기업 사장들이 줄줄이 물러나면서 윤 원장의 거취도 한때 주목받았다. 하지만 윤 원장은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며 잘 적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위가 만들었던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태스크포스’의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금융연구원은 은행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되는, 엄연한 민간 연구기관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낙하산 원장이 물러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원칙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취임한 윤 원장도 자신의 거취를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금융연구원을 ‘2중대’로 거느린 금융위의 신제윤 위원장도 이날 세미나에 참석했다. ‘동양그룹 사태’가 한창일 때 ‘금융비전을 짠다’며 해외 출장을 떠났던 그답게, 이날도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신 위원장과 윤 원장은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등과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사로 “오래~ 오래~”를 외쳤다. 지금 자리를 오래하고 싶다는 의미로 들렸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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