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분단의 역사'를 너머…예술·자유가 춤춘다

입력 2013-11-11 06:58  

해외여행 - 독일 베를린


[ 최병일 기자 ]
독일의 경제 수도라고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ICE 특급열차를 타면 4시간 만에 도착하는 정치 수도 베를린. 이곳으로 입성하는 동안 한국영화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과 ‘타인의 삶’, 숱하게 보았던 첩보액션영화들의 장면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베를린 시내에서는 어느 길거리에선가 BMW, 벤츠, 아우디의 자동차 추격전 등 영화의 한 장면들이 촬영되고 있거나 슈타지(동독 비밀경찰)들이 미행하고 있는 것만 같은 야릇한 기분에 빠진다.

독일 분단의 현장이었던 베를린은 아직도 분단국가에서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묘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눈길로 사방을 살펴보던 여행자의 태도는 얼마 지속되지 못한다. 하루종일 거리 곳곳을 누비다 보면 통일 이후 도시의 역동성, 과거와 현대 건축 디자인의 조화 등이 선사하는 매력에 깊게 빠져든다.

베를린 장벽과 체크포인트 찰리 등을 답사한 후에는 카이저빌헬름교회, 페르가몬박물관, 훔볼트대학, 베를린대성당, 브란덴부르크 문, 포츠다머광장과 소니센터, 알렉산더광장과 TV타워 등의 명소를 둘러보는 식으로 코스를 잡아서 베를린의 맑은 공기를 한껏 즐긴다.

베를린 장벽에 그려진 한국의 DMZ

“비오는 날보다 박물관이 많은 도시랍니다.”

그저 무뚝뚝하고 매사에 이성과 합리만 내세울 것 같은 베를린 시민들에게서 이처럼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비유가 나온다니 신선한 충격이다. 연평균 비오는 날이 106.3일인데 모든 장르의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이 150개나 된다면 자랑할 만하다.

이런 베를린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여행명소는 어디일까. 유럽 대륙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카데베백화점도, 독일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주올로지쉐어동물원도, 길이 2.2㎞의 맥주정원도 아니다. 베를린에 온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베를린 장벽이다.

베를린 시내 동쪽 슈프레 강변의 베를린 장벽은 길거리 화랑이라고도 불리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그곳에 남은 여러 장면의 그림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은 두 공산국가 정상들의 입맞춤 장면을 그린 ‘형제의 키스’다.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서기장이 주인공이다. 징그럽고 구토를 유발하는 두 정상의 입맞춤은 세계 각지로 날아가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는 동독 정권 수립 30주년이던 1979년에 있었던 두 사람의 만남 사진을 바탕으로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이 통독 후 공산독재자들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림 하단에 쓰여진 문구는 이렇게 해석된다.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

1961년 8월13일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9일 무너졌다. 독일 국민들은 재결합했고 베를린은 극적으로 변했다. 장벽의 잔해는 건축재료로 재활용되거나 기념품으로 팔려 나갔다. ‘형제의 키스’ 그림 뒤편으로 돌아가면 세계 각지의 장벽들이 사진과 그림으로 재현돼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그중에는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최전방 초소를 촬영한 사진, 한반도의 평화통일 기원 리본이 무수히 많이 걸린 철조망 사진 등이 벽화로 재현돼 있다.

체크포인트 찰리, 옛 국경검문소가 관광명소로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룬 독일인들을 부러워하는 한편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며 발걸음을 체크포인트 찰리로 옮긴다. 포츠다머광장 동쪽, 짐머거리와 프리드리히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는 독일 분단 시절,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국경 사이에 놓인 검문소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모든 시티투어버스가 경유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미군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대형 성조기를 흔들며 관광객들에게 군모를 씌워주고 기념 사진을 찍게 한다. 바로 옆의 베를린장벽박물관도 들러보면 좋다. 장벽의 역사와 사건들, 동독으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한 갖가지 수단과 스토리를 알 수 있다. 자유와 인권을 갈구하는 인간 승리의 장면 하나하나가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체크포인트 찰리 옆의 맥도날드 카페, 아이슈타인 카페 등에서 평화로이 커피 향을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동독인들의 목숨을 건 탈출이 이제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모험담으로만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분위기가 묵직한 과거사의 테마에서 벗어나 현재의 모습을 보고 싶은 여행자들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남쪽으로 1㎞가량 떨어진 포츠다머광장으로 향한다. 지금은 베를린 시내 중심의 번화한 지역이지만 냉전시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처럼 풀만 자라는 폐허였다. 3년여의 공론 끝에 주거, 상업, 업무,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개발하자는 합의를 도출했고 다임러 크라이슬러 빌딩, 도이치반 빌딩, 소니센터, 복합영화관, 최고급 쇼핑몰과 식당가, 호화 아파트와 사무실 등이 들어서면서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로 명성을 굳혔다.

영화박물관에서 마를렌 디트리히를 만나다

후지산의 형상처럼 고층 건물 가운데로 방사선 형태의 하얀 천막이 하늘을 장식한 소니센터의 경우 2003년부터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현장으로 변신했다. 이곳의 영화박물관(deutsche-kinemathek.de)은 실내 촬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꼭 방문해봐야 할 곳이다.

독일 영화의 선구자와 디바들, 1920년의 공포물, 바이마르공화국의 필름, 트랜스애틀랜틱 여객선의 모형, 독일이 낳은 세계적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1901~1992)의 삶과 영화, 나치제국 시절의 필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영화, 1981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독일 출신 영화감독들 등을 흥미로운 구성으로 꼼꼼하게 보여준다.

특히 ‘다리가 긴 섹스 심벌’ ‘허스키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사로잡는 스타’ ‘1930년대 할리우드의 여왕’이라는 평을 들은 마를렌 디트리히를 위해서는 3개의 전시실을 할애하고 있다. 영화와 쇼에 사용된 의상, 초상화, 유명 사진가들이 촬영한 빈티지풍 사진들, 액세서리와 그밖의 소품들, 여행가방, 편지 등을 포함해 다양한 유물이 총 130점 정도 전시돼 있다. 그녀는 1930년 영화 ‘블루 앤젤’에 출연한 후 스타가 됐고 이 영화에서 부른 ‘폴링 인 러브 어게인’은 평생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마를렌 디트리히에 대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녀는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화박물관 앞 스타의 거리에도 이름을 남겼다. 이곳 ‘스타의 거리’에는 디트리히와 베른트 아이힝거 외에 40명의 배우, 감독, 작곡가, 극작가의 이름이 새겨져 영화 마니아들에게 방문의 의미를 살려준다.

이 박물관에서는 베른트 아이힝거, 김기덕 등 세계 각국의 유명 감독별, 영화 주인공별 전시회도 해마다 두세 차례씩 펼쳐진다. 박물관을 떠나기 전, 지하 1층의 휴게실 유리벽에서 읽은 노란색 글씨의 명언 한 마디가 베를린 방문자의 황량한 가슴을 파고든다. ‘인간은 황무지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요리, 영화, 인간을 갈망한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레이건의 명연설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중앙역과 포츠다머광장 중간쯤에 위치한다. 여행자들은 흔히 파리에 개선문이 있다면 베를린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다고 말하는데 18세기 말에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열주문을 본떠서 베를린의 시티게이트로 지어졌다. 동서독 분단 시절인 1987년 6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이 문 앞에서 고르바초프에게 냉전 종식을 제안했다.

“고르바초프씨, 이 문을 여시오. 이 장벽을 허무시오.”

그로부터 2년 뒤 독일 국민들은 통일을 성취했다. 현재 이 문 앞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붐빈다. 독일, 옛 소련, 미국 국기를 든 청년들이 각국의 군모를 쓰고 과장된 몸짓으로 기념촬영에 응한다. 굳게 닫힌 문은 레이건이 어렵사리 열었는데 유로는 군복과 군모 차림의 가짜 군인들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벌어간다. 베를린 특산 맥주인 ‘베를리너 바이세’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베를린=유연태 여행작가 kotour21@naver.com

■ 여행팁

인천국제공항에서 베를린으로 바로 가는 국적항공 직항편은 없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유레일패스를 이용, 기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베를린의 비즈니스 숙박지로는 안델스호텔(andelsberlin.com)을 추천한다. 14층의 스카이바는 베를린 시가지 전망 명소. 최근에는 한 번 충전하면 160㎞를 달리는 전기자동차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베를린중앙역에서 S7열차를 타고 알렉산더광장에서 메트로트램 M5번으로 갈아타면 호텔에 닿는다. 시내 투어를 위해 베를린 웰컴카드를 준비하면 편리하다. 각종 교통편을 무료로 이용하고 미술관, 박물관 등은 할인해준다. 24시간짜리가 18.5유로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베를린관광청 홈페이지(visitberlin.d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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