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규 기자 ]
중국에 진출한 국내은행 현지법인들에 비상이 걸렸다. 다음달 말까지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0.5%포인트 안팎씩 끌어올려야 해서다. 중국 금융당국은 연초 은행들에 2016년까지 모든 대출에 대손충당금을 2.5%까지 쌓을 것을 지시했다. 지금은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1% 안팎에 불과해 당장 올 연말부터 단계적으로 끌어올려야 할 상황이다. 베이징 시내 번화가 차오양구에 있는 우리은행 중국법인의 최만규 법인장은 “규제가 갈수록 강화돼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별화된 전략 없이 출혈경쟁을 벌이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법인 이익 급감, 적자도 속출
2007년 11월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잇따라 중국에 법인을 세우고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국내은행들의 수익성이 기대와 달리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적자법인까지 속출하는 상황이다.
중국에 진출한 9개 국내은행(6개 현지법인, 8개 지점)은 지난 상반기 총 23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전년 동기 661억원보다 64.5% 급감한 규모다. 국내은행들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 감소폭 48%를 웃도는 것이다. 손실은 3분기 들어 더 커져 일부 은행은 적자로 돌아섰다. 신한은행 중국법인은 3분기에 75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1~3분기 누적실적에서도 70억원 손실을 기록 중이다. 작년 말 중국법인을 낸 국민은행은 1~3분기 손실이 191억원에 달했다.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강화 탓”
현지의 강화된 규제가 수익 악화의 최대 원인으로 꼽힌다. 2016년까지 정상이든 부실이든 상관 없이 대출금의 2.5%를 대손충당금으로 적립하라는 지침이 대표적이다. 조영식 신한은행 중국법인 부법인장은 “단계적으로 무조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해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예대율이 75%로 낮아진 것도 타격이다. 예금으로 100을 받으면 대출을 75까지만 내줄 수 있다는 의미다. 최 법인장은 “규제 비율을 맞추기 위해 예금을 늘리고, 대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실적이 악화됐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중국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하한선(연 6.0%)과 예금금리 상한선(연 3.0%)을 없애기로 해 대출금리는 낮아지고, 예금금리는 올라 예대마진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는 게 현지 진출 은행들의 설명이다.
◆‘판박이 영업’으로 출혈경쟁 지적도
똑같은 규제를 적용받는 중국은행들의 순이익이 늘어난 걸 감안하면 국내은행들의 ‘남 탓’은 변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상 농업 중국 건설 교통 등 5대 국유은행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일제히 12~14% 늘었다. 중국씨티은행도 지난해 순이익이 2011년보다 9% 증가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국내은행들은 한국에서처럼 몰려다니면서 판박이 영업을 하는 탓에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의 한 국내은행 직원은 “한국 은행들이 비슷한 지역에 진출해 같은 고객을 놓고 싸우면서 출혈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이징=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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