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까지 3대째 가업
10代때 대장간서 농기구 제작…흙 붙지않는 쟁기 개발해 히트
최고품질에만 '이름표'
고객 초청 시동거는 전통 고수…고장 신고땐 농장찾아가 AS
지구온난화 예방에 앞장
셔츠·모자에 로고…브랜드 강화…농민들과 손잡고 풍력발전사업
[ 박병종 기자 ]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발행하는 스미스소니언지 11월판에는 ‘미국을 바꾼 위대한 물건’으로 강철쟁기가 집중 소개됐다. 초창기 미국의 농업생산성을 크게 높였다는 이유에서다. 이 강철쟁기를 처음으로 만든 회사는 ‘존 디어(John Deere)’라는 브랜드로 알려진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업체 디어앤드컴퍼니(D&C)다. 지난해 매출이 362억달러(약 38조8000억원)이자, 브랜드 가치만 64억달러(약 6조86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존재감이 만만치 않은 기업이다. 최근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도 포함된 D&C는 전통의 컴퓨터 강자 델과 세계 항공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보잉을 따돌리고 83위에 올랐다.
D&C는 1837년 설립돼 올해로 176년을 맞은 장수기업이다. 트랙터 제조뿐 아니라 지게차, 불도저 등과 같은 산업 장비와 휴대용 동력 톱, 잔디깎이 등과 같은 소비재도 생산하고 있다.
○쟁기 만들던 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
1804년 미국 버몬트주 루트랜드에서 태어난 D&C의 설립자 존 디어는 루트랜드로부터 북쪽으로 50㎞ 떨어진 미들버리에서 자랐다. 미들버리의 한 대장간에서 그는 농기구 만드는 법을 익히며 10대를 보냈다. 4년간의 도제살이 끝에 대장간을 차렸지만 장사가 안돼 곧 파산할 위기에 처하자, 1836년 고향을 떠나 일리노이주 그랜드 디투어로 갔다.
그곳에서 농기구를 수리하며 살던 디어는 어느 날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쟁기에 달라붙은 흙을 털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멈춰 서는 것을 봤다. 농부들은 “계속해서 쟁기 바닥에 달라붙는 흙을 손으로 제거해야 했기 때문에 작업이 힘들고 오래 걸린다”고 불평했다. 그는 뉴잉글랜드의 가벼운 모래토양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던 무쇠쟁기가 중서부의 묵직한 점토성 토양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반영해 1836년 흙이 달라붙지 않도록 곡선형으로 설계한 강철쟁기를 발명했고, 이듬해 D&C를 설립해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 곡선형의 쟁기날을 따라 점토성의 흙은 둥글게 말려 스스로 떨어져 나갔고, 노동효율을 높여준 덕에 큰 인기를 끌었다.
새 쟁기의 주문이 쇄도하자 1848년 미시시피 강변의 교통로를 활용하기 위해 사업체를 일리노이주 멀린으로 옮겨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미국 전역에 쟁기를 공급했다. 그의 쟁기 덕분에 미국 중서부 지역 농부들의 곡식 수확량은 크게 증가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들 찰스 디어는 회사를 키워나갔고, 1911년 찰스의 사위이자 제3대 사장인 윌리엄 부터워스는 6개의 농기계 회사를 인수합병해 회사를 급성장시켰다. 1923년에는 D&C 최초의 트랙터인 ‘모델D’를 내놓았다. 이후 D&C는 성장을 거듭해 현재 미국, 캐나다, 서유럽,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등에 공장이 있으며 42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가 됐다. 진흙이 들러붙지 않는 쟁기 혁신에서 출발한 D&C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한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176년에 걸친 장수 비결은 ‘바로하기’
D&C가 장수업체로 꾸준히 성장해온 비결은 디어의 ‘바로하기(go the right way)’ 경영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혁신을 통해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며, 고객과의 약속은 성실히 지킨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품질과 관련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제품에는 결코 내 이름을 붙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은 전통이 이어져온 D&C는 지금도 콤바인이나 대형 트랙터를 사는 고객을 직접 이스트멀린 공장으로 초대해 생산라인을 보여준 뒤, 고객이 제품의 첫 시동을 걸도록 한다.
‘바로하기’는 서비스에도 적용된다. D&C는 제품판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후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장신고가 들어오면 서비스맨이 부품을 들고 농장을 직접 방문한다. 불황기에도 품질 향상을 위해 연구개발비를 줄이지 않는다. 디어의 뒤를 이은 경영자들이 ‘바로하기’ 경영철학을 존중하고 있어서다.
잘나가던 D&C에도 시련은 있었다. 2005년 인도 진출 당시 대형 트랙터의 경쟁력을 과신한 나머지 소형 트랙터가 대세인 인도의 특성을 가볍게 보고, 저가 모델인 범용 트랙터를 일부 수정하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고객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D&C는 현지기업 마힌드라&마힌드라에 참패했다. 이후 D&C는 7000명이 넘는 예비 고객과 접촉해 소비자 특성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인도 농부는 미국 농부와 비교해 트랙터를 10배 이상 사용하고 있었으며, L당 12㎞가 넘는 연비의 소형 트랙터를 15년 정도 고장 없이 쓰기를 원했다.
D&C는 인도 소비자의 주요 요구사항을 모두 갖춘 35마력짜리 초소형 트랙터를 저가에 내놓고, 1년 무상 유지·보수와 3년 품질 보증을 약속했다. 2년 보증이 대세였던 당시 상황에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후 D&C의 트랙터 판매는 꾸준히 늘었고, 인도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바로하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야구모자에서 풍력발전까지 다각화
1876년 D&C가 등록한 사슴 로고는 130년이 넘는 동안 회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창업자 존 디어(Deere)의 이름과 철자가 비슷한 사슴(Deer)을 차용해 중의적인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몇 번의 수정은 있었지만 달리는 사슴 이미지를 통해 “디어처럼 달리는 것은 없다”는 D&C의 모토는 변함없이 이어졌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D&C가 선택한 또 다른 방법은 부가상품 판매였다. 일반 대중에 브랜드 노출기회가 적은 업종의 한계를 보완하고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D&C는 티셔츠와 야구모자는 물론 각종 트랙터 장난감까지 다양한 부가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존디어 로고가 새겨진 야구모자는 애쉬튼 커처와 조지 클루니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가 애용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 됐다. D&C의 제프리 그레드비그 브랜드 담당 이사는 “단순 판촉용으로 제작한 모자와 티셔츠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과 브랜드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갖게 해주는 수단이 됐다”며 “처음에는 판매상들이 원하더니 일반 소비자를 중심으로 수요가 점점 늘어났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든 이유도 전략적인 포석의 하나다. 지구온난화로 농업이 타격을 입게 되면 농기계업체인 D&C의 미래 성장성도 위협받게 된다는 점을 내다본 투자였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D&C는 농민들과 연계한 풍력발전사업을 시작했다. 농민들이 보유한 토지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생산된 전기를 지역 전력회사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사업비의 절반은 D&C가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투자자로부터 유치했다. 농민들은 부지를 제공하고 여기서 얻는 이익은 골고루 배분했다. 이 프로젝트로 생산된 전기는 최대 1만가구에 공급되며 연간 100만~150만달러의 수익을 내고 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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