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요즘 화두는 ‘해외’다. 금융업계도, 금융당국도 해외에 꽂혀 있다. 내용은 다르다. 금융업계는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사건이 어떻게 번질지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면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을 해외로 보내기 위한 유인책 마련에 열심이다. 업계는 해외진출의 부작용을 염려하고 당국은 해외에 먹거리가 있다고 부추기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의 판단은 맞다. 국내 경제가 저성장·저금리체제로 접어들면서 금융회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익은 반토막으로 줄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의 이익률을 높이는 게 첫 번째다. 아니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
해외 먹거리, '그림의 떡'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익률을 높이기는 글렀다.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부실여신 등을 감안하면 이익률은 오히려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새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힘들다. 하고 있는 업무에서조차 손을 떼야 하는 형편이다.
결국 해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당국의 판단은 옳다. 그렇다면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자’고? 아니다. 이미 철 지난 축음기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모델로 내세운 건 호주 맥쿼리다.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틈새를 파고들면서 영향력을 키우자는 취지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신설 해외점포의 경영실태평가를 3년 이상 유예해 주는 등 몇 가지 유인책을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한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글쎄올시다’다. 취지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엔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장 큰 원인은 최고경영자(CEO)의 불안한 입지다. CEO들은 단기간 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리를 내놔야 한다. 반면 해외진출은 장기간 인내를 필요로 한다. 단기성과가 급한 CEO들로선 해외점포의 장기간 적자를 감내하기 힘들다. 주인 없는 은행의 은행장들은 더욱 그렇다.
최소 10년은 참고 기다려줘야
국민은행이 8000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투자도 그렇다. 감독당국의 검사 결과 투자과정부터 잘못됐다. 당시 연임을 염두에 둔 은행장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다는 해석이 많다. 지금은 또 다르다. 은행 내부에선 BCC 철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투자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현지 직원들은 3년만 지나면 증자 없이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보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안전제일’을 추구하는 국내 금융사들의 몰려다니기 행태도 문제다. 남들이 가지 않은 나라에 진출했다가 잘못돼 책임추궁을 당하느니, 남들이 가는 곳에 묻어 나가는 게 담당자에겐 안전하다. 유행처럼 중국에 몰려갔다가 인도네시아와 미얀마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선점효과는 그 다음 문제다.
결국 금융당국이 아무리 그럴듯한 금융회사 해외진출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대로 실행될 것으로 장담하긴 힘들다. 금융회사 문화를 확 뜯어 고치든지, 아니면 타당한 해외진출의 경우 최소 10년은 참고 기다리겠다는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의 공동선언이 나오기 전에는 그렇다. 신한은행이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중 당기순이익 2위 은행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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