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정 기자 ] “투자는커녕 몸만 사리고 있습니다.” 운용자산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해외 부동산을 관심 있게 보고 있지만 투자 실행은 검토조차 못하고 있다며 중소형 보험사 사장이 한 하소연이다.
이 보험사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보험사는 내년 사업전략을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짜고 있다. 해외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고위험 고수익’ 자산은 쳐다보지 못하고, 대신 국고채처럼 안전한 투자 대상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부가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금융당국은 위험기준자기자본(RBC) 제도를 통해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감독한다. RBC는 보험금 지급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요구자본이다.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인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게 바로 RBC 비율이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RBC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현행 95%인 신뢰수준을 2014년까지 99%로 높이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20년에 한 번 발생할 손실에 대비했다면, 이제 100년 만에 발생할 수 있는 큰 피해에 대비하겠다는 의미다. 이럴 경우 보험사의 재무상태가 예전과 똑같아도 RBC 비율이 급락하게 된다. 영업환경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RBC 비율은 최대 70%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보험법상 RBC 비율 100% 미만의 보험사에 적기시정조치가 내려진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권고 기준’이라는 명목으로 RBC 비율 200%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보험사들은 유상증자 후순위채 등으로 돈을 확보해 권고 수준 맞추기에 급급하다. 창의적인 경영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보험의 공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재무건전성 규제 강화’라는 큰 방향을 잘못됐다고 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강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RBC 제도를 시행하면서 비율을 관리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함께 마련해 줬다. 보험계약 유동화를 통해 위험을 낮춰갈 수 있도록 한 조치 등이다.미국으로부터 RBC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에 걸맞은 환경까지 갖고 오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의욕이 앞선 규제 강화로 인한 기회비용이 너무 큰 게 아닌지 우려된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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