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락 총리 불신임안은 부결
바트화 가치 한달새 3% 하락
[ 이미아 기자 ]
태국에서 잉락 친나왓 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잉락 총리가 추진 중인 정치사범 사면법이 그의 친오빠이자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던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28일 태국 일간지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태국 77개주 중 31개주에서 태국 최대 야당 민주당과 부패 반대를 요구하는 중산층이 주축인 반정부 시위대가 주정부 청사를 점거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이번 시위를 주도 중인 수텝 타웅수반 전 부총리는 최근 민주당 의원직을 사퇴하고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7일 방콕에선 1만여명의 시위대가 거리 행진을 벌였고, 태국 남부 송클라주에선 민주당 지지자인 그리사다 분라크 주지사가 아예 청사를 시위대에게 내주기까지 했다. 태국 의회에선 28일 잉락 총리 불신임안이 표결에 부쳐져 부결됐다. 하지만 방콕포스트는 “이번 시위는 2010년 3~5월 벌어졌던 반정부 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전했다.
반정부 시위가 거세진 이유는 지난달 초부터 잉락 내각과 푸어타이당이 추진한 사면법 때문이다. 이 법안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치사범으로 기소된 정치인과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을 사면·복권한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이 사면법의 소급적용 시기 범위 때문에 태국 내부에선 “이 법안은 탁신 전 총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하야한 뒤 권력 남용과 부패 혐의 등으로 재판받던 중 2008년 해외로 망명했다. 사면법 적용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태국의 정국 불안은 향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27일 “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국가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만성화된 시위와 혼란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늦추고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이날 저녁 긴급 성명을 통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2.25%로 결정했다.
태국 바트화 가치는 달러당 32바트대로 시위 시작 후 한 달 만에 약 3% 떨어졌다. 지난 8~9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동남아시아 신흥국 통화가치의 동반 하락 당시와 같은 수준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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