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GDP의 38%…서둘러 협상 나서야 실익
올해 안에 예비협상 통해 참여조건 등 파악
[ 조미현 기자 ] “버스는 이미 지나갔다. 택시를 잡아타고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정부가 29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대해 전격 관심을 표명한 배경을 두고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12개국 TPP 협상 대표들이 최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핵심 현안에 대한 합의를 끌어낸 것으로 전해지면서 더 이상 지체하다간 향후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일본 참여선언이 결정적
한국이 TPP에 대한 ‘관심 표명’을 한 것은 사실상 협상 참여 수순을 밟아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한국 통상정책의 근간인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중심에서 벗어나 FTA와 다자간 협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트랙’ 전략을 본격적으로 펴겠다는 선언이다.
그동안 정부는 미국 등의 직간접적인 TPP 참여 요구에도 ‘관망’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미 발효된 미국·유럽연합(EU)·아세안(ASEAN) 등과 맺은 FTA를 안착시키는 게 급선무인 데다 TPP의 손익이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중 FTA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TPP에서 거리를 두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통상당국자들도 대체로 TPP보다는 한·중, 한·중·일 FTA가 우선이라는 인식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 4월 TPP 협상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국내에서 TPP 관련 논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이 TPP에 참여하고 한국이 배제될 경우 어렵게 다진 세계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된 것. 정부가 산업계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의견 수렴에 들어간 것도 일본의 TPP 협상 참여 선언 직후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의 참여 선언으로 TPP에 대한 정부 입장이 전면 재검토되기 시작했다”며 “TPP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일본에 의해 촉발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올해 말까지 TPP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목표 시한을 설정한 것도 한국으로선 부담이었다.
○세계 최대시장 확보해야
한국은 현재 10개 양자간 FTA를 체결하고 중국 주도의 또 다른 거대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하는 등 거대 통상국가다. 이런 이유로 TPP에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이제까지 발빠르게 체결해 온 FTA 효과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한국은 미국, EU 등 거대 경제권과 FTA를 맺으면서 선진국 시장 선점효과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TPP 참가국들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38%를 차지하는 등 수출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에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TPP의 협상 목표는 ‘21세기형 FTA’로 높은 수준의 시장접근 달성, 역내 공급체계(서플라이 체인) 강화, 새로운 통상이슈 대응을 과제로 잡고 있다. 지금 이 상태로 타결되면 인구 7억8400만명, 명목 GDP 28조달러, 무역규모 10조1900억달러로 GDP 면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역경제통합체가 된다.
○사전협의 최대 1년 걸릴 듯
정부는 일단 TPP 참여를 확정하지 않고 양자 예비협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TPP 참여국들은 협상 내용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다. 때문에 협상 당사국들과 사전에 협의를 하지 않고서는 협상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우 실장은 “현재 협상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최대한 빨리 TPP 참가국들과 사전협의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TPP 참가국과 양자 간 예비 협의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2011년 11월 TPP에 관심을 표명한 뒤 올 3월 TPP 참가국과 협의를 마쳤다. 사전협의에만 1년4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이후 공식 선언을 한 뒤에도 TPP 참여국들의 동의를 얻는 데 4개월이 더 걸렸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 TPP
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관세 철폐와 경제 통합을 목표로 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뜻한다.
참가국 경제규모를 합치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경제의 38%(28조달러)를 차지한다. 이는 유럽연합(18조달러)보다 큰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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