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영 기자 ] 지난 11월 중순 A씨가 국민주택채권 1000만원권 14장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국민은행 명동지점을 찾았다. 채권을 받아든 H팀장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자가 너무 희미했다. 일련번호도 덧씌운 채 인쇄된 표시가 역력했다. 그는 본점 주택기금부 P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P차장은 “문제없으니 돈을 내주면 된다”고 말했다. H팀장은 채권 실물을 확인하지 않은 채 현금을 내주라는 P차장이 의심스러웠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국민은행 직원의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이 발각된 것은 H팀장의 작은 의심 때문이었다. 채권위조 주범인 P차장은 평소 위조한 주택채권을 지인 A씨를 시켜 영업점에서 현금으로 바꿔오게 하는 수법으로 돈을 횡령했다. 의심을 품은 영업점 직원이 본점에 전화를 걸면 관련 업무 담당인 그가 직접 “현금을 내줘도 된다”고 말했다.
의심을 품은 H팀장은 자체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는 다른 지점에서 수거된 채권 중 A씨가 가져온 채권 일련번호의 앞뒤번호가 찍힌 채권이 있는지 전산조회를 했다. 영업점마다 100단위로 일련번호를 찍어 국민주택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같은 영업점에서 발행된 채권을 찾으면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수배한 채권들을 비교해보니 A씨가 가져온 채권의 직인에는 ‘주택은행’이, 다른 영업점에서 수배한 채권 직인엔 ‘국민은행’이 찍혀 있었다.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2001년 통합됐으므로 A씨가 가져온 2003년 발행 채권엔 ‘국민은행’이 찍혔어야 맞았다. 수년 동안 100억여원을 횡령하던 P차장은 이렇게 덜미가 잡혔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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