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코틀랜드

입력 2013-11-29 21:36   수정 2013-11-30 09:20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유명한 전투 장면은 1314년 6월23~24일 배넉번에서 벌어진 실제 전투를 재연한 것이다. 이 싸움에서 무기라고는 창밖에 없는 몇천명의 스코틀랜드군은 기병대를 앞세운 2만3000여명의 잉글랜드군을 대파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했다. 로이 윌리엄슨이 작곡한 국가 ‘스코틀랜드의 꽃’도 이 때의 승리를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초 잉글랜드에 병합됨으로써 독립국의 역사는 400년 만에 끝났다. 이후 대결은 수면 아래로 잦아드는 듯했으나 적대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스코틀랜드 인구는 500여만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스카치위스키와 골프, 체크무늬 옷과 백파이프로 상징되는 문화의 힘도 여전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계몽주의 사상가와 대문호, 뛰어난 학자들을 대거 배출했고 경제성장도 다른 나라보다 빨랐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데이비드 흄, 프랜시스 베이컨, 제임스 보즈웰 같은 거장들이 잇달아 나왔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와 전보를 발명한 윌리엄 톰슨도 스코티시다.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소설가 월터 스콧, ‘피터팬’의 제임스 매튜 배리, ‘셜록홈즈’의 아서 코넌 도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지낸 퍼거슨도 자랑거리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등 신흥국가까지 변화시켰다. 근대정신의 출발이라는 분석도 많다. 특히 흄은 진화사상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기초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을 발전시켰다. 중앙은행제도를 만든 주역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었다. 경험을 중시하는 이들은 독일철학의 관념주의를 넘어 현대 영미철학의 뿌리를 형성했다.

노벨상 수상자도 10명이나 된다. 1996년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멀리스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스미스나 흄 같은 인물을 배출한 비결을 ‘교육’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문맹률이 25%로 유럽에서 가장 낮았으니 그럴 만했다.

분리독립 요구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전통 때문이다. 엊그제 자치주 총리가 내년으로 예정된 국민투표에 앞서 장밋빛 미래전략을 내놨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반응은 냉소적이고 분리독립 문제로 시달리는 스페인 등 유럽국가들의 반대도 심하다. 지식인들 또한 “내년에 배넉번 전투 700주년은 기억하면서 1차 세계대전(1914~18년) 100주년은 알지 못할 것”이라며 지나친 민족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복지 천국’ 구호와는 달리 재정계획이 엉성한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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