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간섭 커지며 쇠락의 길 걸어
우리도 규제입법에 열중한다면
안재욱 <경희대 서울부총장 경제학 jwan@khu.ac.kr>
유럽에서 12~13세기는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소득과 인구가 동시에 증가했던 융성의 시기다. 그러던 유럽이 14세기 들어서면서 인구가 감소하고 생활수준이 하락하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14세기 중세 유럽 쇠퇴의 원인으로 기후 변화와 몽골에 의해 전파된 흑사병을 든다.
14세기 초 연평균 기온이 떨어지면서 유럽의 따뜻했던 기후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기후로 인해 1315~1317년 사이에 대기근이 발생했다. 몽골에 의해 유럽에 흑사병이 전파됐다고 하는 이유는 1347년 몽골이 포위 공격했던 크림공화국의 페오도시야에서 처음으로 흑사병이 발생해 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역사학자는 기후변화와 흑사병이 14세기 중세 유럽 쇠퇴의 주요 요인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다른 것, 즉 왕권 강화로 인한 상업의 쇠퇴에 있음을 지적한다. 상업이 쇠퇴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크게 저하됐고, 빈곤한 생활로 인해 건강이 나빠져 저항력이 약해졌으며, 그 상태에서 대기근과 흑사병이 덮쳐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한다.
12세기부터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시장으로 부상했던 곳이 샹파뉴다. 우리가 요즈음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스파클링 와인의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곳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국경과 인접해 육상과 하천의 중요한 통상로였고 이곳을 통해 수많은 재화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샹파뉴가 유럽의 상업 중심지가 됐던 이유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백작령이었기 때문이다. 왕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백작은 거래의 자유와 상인의 통행 안전을 보장했다. 상거래 관습을 존중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상업법정을 설치하며 상거래의 편의를 제공했다. 물론 이는 시장을 활성화해 세수입을 올리려는 의도였다. 국제적 상품거래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금융 중심지 역할도 했다. 다양한 화폐의 환전, 거액의 화폐유통을 대신할 어음의 발행, 어음결제를 위한 청산제도, 어음의 보증과 보증어음 담보부 대부 등 다양한 금융제도가 발전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샹파뉴가 14세기에 들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백작령의 상속녀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결혼해 샹파뉴가 프랑스 왕령지에 포함되면서부터다. 필리프 4세는 왕실 재정의 궁핍을 타개하기 위해 세금을 대폭 올렸다. 부유한 유대인을 박해했으며 템플 기사단을 해산시켜 그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자 상인들이 샹파뉴를 버리고 떠났다. 대신 이탈리아와 대서양의 무역항을 기점으로 하는 해양무역을 선택했다. 자연히 이 지역들이 번성하기 시작한 반면 샹파뉴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육상 무역과 상업은 급격히 위축돼 유럽의 다른 지역들은 쇠퇴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금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외부 요소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 여전히 남아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 불씨,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중국의 거품 제거 이후에 닥칠 경기 후퇴, 무제한 양적완화를 하고 있는 일본 리스크 등은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외부 충격에 견디기 위해서는 내부의 저항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사정은 어떠한가. 정책의 실패가 분명히 드러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등과 같은 각종 잘못된 제도를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정부는 무관심으로, 국회는 정쟁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더욱이 기업의 활동을 옥죄는 각종 법안을 쏟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세금 올리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왕권 강화로 쇠약해진 경제에 기후변화와 흑사병이 덮쳐 피폐해졌던 14세기 유럽이 눈앞에 겹쳐진다. 정부와 정치권의 쇄신이 없으면 세계 경제가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질 때 한국 경제는 정말 어려워질 수 있다. 착잡한 마음이 눈처럼 쌓여 가는 세모(歲暮)다. 2013년 12월, 참 답답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안재욱 <경희대 서울부총장 경제학 jw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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