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 SSM' 사라진줄 알았더니...입법 미비에 더욱 '활개'

입력 2013-12-02 14:14  


[ 노정동 기자 ] # 서울 도봉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최경환 씨(48·가명)는 최근 대형 유통업체들이 상품공급점 사업에서 철수하겠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고민만 커지고 있다. 몇 달 전 인근에 들어선 상품공급점 탓에 월 매출이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져서다. 최 씨는 이들 상품공급점의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매출 부진이 지속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14일 대형 유통업체와 동네 슈퍼들이 상품 공급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일단락 될 것처럼 보였던 상품공급점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 주최로 대기업과 동네슈퍼들이 대·중소 협력을 합의한지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일부 지역에서 대형마트 간판을 단 상품공급점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유통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 이상 대형 유통업체들의 상품공급점 사업을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항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는 지난달 26일 "다음달 청주 지역에 롯데슈퍼의 상품공급점이 신규 개점될 예정"이라며 "상품공급점에 대형 유통기업의 상호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 유통산업연합회의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롯데는 롯데마트 서청주점을 개점할 당시 의무휴업 등 유통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복합쇼핑몰로 사업자등록을 하는 등 꼼수를 부린바 있다"며 "대형 유통사들은 간판을 내거는 일이 점주의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롯데 측의 묵인 없이 개인 점주의 결정으로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관련법 개정이 없는 한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했다. 대·중소간 업무협약만으로는 '변종 SSM' 논란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3사와 체인스토어협회,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이 공동구매사업을 통해 동네슈퍼에 물건을 공급하기로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이는 유통단계만 추가되는 것이어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상품공급점 점주들은 여전히 협동조합보단 대형마트 측으로부터 물건을 공급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달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와 "앞으로 간판 부착이나 유니폼, 판매관리 시스템(포스·POS) 지원, 경영지도를 대행해주는 사업은 일절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부회장의 발언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3사는 잇따라 상품공급점 사업을 축소하거나 물류 공급에만 집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 같은 결과 지난달 14일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대형마트 3사와 체인스토어협회는 상호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공동구매사업을 통해 대·중소간 동반성장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충북네트워크는 "결국 상호간 업무협약이 아닌 상품공급점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며 "국회는 대형 유통기업의 상품공급점에 대한 영업규제를 포함하는 내용의 유통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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