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석 기자 ] 한 나치 과학자에 의해 탄생한 94명의 히틀러 복제 소년을 다룬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은 대중이 인간 복제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을 보여준다. 도청을 소재로 한 1970년대 영화 ‘컨버세이션’은 최근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감시사회에 대한 윤리와 그 딜레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공상과학(SF), 공포,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 30편을 통해 지난 수십년간 첨단 과학기술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구현돼 왔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핵, 우주, 컴퓨터, 환경, 생명공학과 같은 과학기술이 지닌 사회적 영향과 위상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수많은 영화 속에 비친 과학자의 모습에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전형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은 외골수로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사악하고 신비스러운 힘이나 금기시되는 지식을 연구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는 것. ‘스파이더맨’ ‘헐크’ ‘프랑켄슈타인’ 등 미치고, 나쁘고, 위험한 과학자의 모습을 그린 영화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인공지능 기계가 발전하면서 독자적인 사고와 의지를 갖게 돼 주인인 인간에게 반항하고 심지어 인간을 지배하려 든다는 설정의 작품도 많다. 이런 설정은 1960년대의 ‘알파빌’, ‘2001년 스페이드 오디세이’부터 오늘날의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에 이르기까지 핵전쟁이나 가상현실 등과 연관돼 나타난다. 저자는 “이런 영화들의 근저에는 컴퓨터를 인간적인 것과 대척점에 있는 것 혹은 ‘궁극의 기술적 괴물’로 파악하는 기술공포론적 시각이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또 내부고발자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영화 ‘인사이더’를 통해 과학의 개방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명왕성의 행성 지위 박탈을 둘러싸고 과학계와 일반인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명왕성 파일’을 소개하며 과학이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도 보여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 여성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의 활약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극비 계획 로지’의 예를 들며 여성 과학자들이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가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사회상을 꼬집는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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