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미제사건 45건, 2014년 1월29일까지 집중 재조사 착수
'미제팀' 신설 이후 첫 수사 설명회…끝까지 사건 해결, 피해 가족들에 '믿음'
대부분 오래된 사건, 주변 인물 다시 만나고 실마리 찾기 '동분서주'
혈흔·DNA 분석 적용…과학수사 기법 보강…"반드시 잡힌다" 경각심
[ 김태호 기자 ]
“정승찬 씨(실종 당시 33세) 매형되시죠? 잠시 경찰서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2월 최인철 씨(46)는 서울지방경찰청 중요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008년 실종된 처남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애타게 기다렸던 소식이었지만 반가움은 잠시였다. 아내 정은주 씨(43)와 함께 찾은 서울청에서 담당 형사는 “유감스럽게도 승찬씨가 살해당했다”며 “범인을 잡게 돼 연락드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했다. 범인은 승찬씨와 평소 지게차 운전을 함께하던 직장동료 박모씨였다. 함께 사업을 논의하다 다툼이 생겼고, 승찬씨가 살해당한 것이다.
승찬씨는 평소 가족을 아꼈다. 가족을 버릴 사람이 아니었지만 실종 이후 곳곳에서 “승찬이를 봤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가족은 그가 죽었다고는 생각지 못했고, 연락이 없는 그에 대해 원망만 키워갔다.
그가 사라진 세월 동안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살림만 했던 아내는 자식 셋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새벽까지 지게차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큰딸 성희(19)는 가출을 일삼다 고등학교 진학도 제때 하지 못했다. 큰아들 성호(16) 역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풀며 지냈다. 유일하게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승찬씨의 아버지는 “죽어야 우리 아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채 2011년 목숨을 끊었다. 승찬씨에게 지게차 운전을 처음 가르쳤던 인철씨는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이후 가족에게 느리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 은주씨를 찾은 조카 성호는 “아버지께 죄송하다”며 “앞으로 우리 가족은 제가 잘 돌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은주씨는 “뒤늦게나마 모든 것이 밝혀져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요 미제사건 45건 집중 재수사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피해를 보고, 범인이 누군지조차 모른 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장기 미제사건 피해자들.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지방경찰청마다 2011년 12월 설치된 ‘중요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하 미제팀)’이 2주년을 맞았다.
경찰청은 신설 2주년을 맞아 중요 미제사건 45건을 골라 내년 1월29일까지 집중 재수사에 착수한다. 수사 요청이 계속되고 있는 사건들 위주로 선정했다. 이 중 34건은 살인사건이다. 살인사건은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이 큰 점을 감안했다. 나머지 11건은 성폭력사건, 실종사건, 강도사건 등이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 수사를 위해 지난달 26일 각 지방청 미제팀 형사들을 모아 수사기법 등을 교류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집중 수사 기간에 서로 수사 정보를 공유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경찰은 사건 해결 시 특진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수사관들이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피해자 가족 아픔 보듬는다.
이번 집중수사에서 경찰청은 미제팀 신설 이후 처음으로 ‘수사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경찰이 끝까지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2003년 살인사건에서 조카 2명을 잃은 강석규 씨(53). 20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형의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생각했던 석규씨는 당시 무참하게 살해당한 조카들의 모습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 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현재 집중수사 45건에 선정됐다.
그동안 석규씨의 가슴에는 한이 생겼다.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아직 이 사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충격으로 또다시 좋지 않은 일이 이어질까 두려워서다. 어머니가 조카들을 자연스럽게 잊게 하기 위해 매년 명절이면 국내외로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나고 있다. “우리 손주가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을 그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 한다. 사건 이전 매년 찾았던 형의 산소를 찾지 못한 것도 벌써 10년째다.
석규씨는 이런 마음의 한을 시를 쓰며 승화시켜왔다. 그런 그에게 최근 김성용 서울청 미제팀 반장과의 통화는 새로운 위안이 되고 있다. 김 반장은 종종 석규씨를 찾아 안부를 묻고 그동안의 수사상황을 설명한다. 만나지 못할 경우 이틀에 한 번꼴로 꼬박꼬박 전화를 건다. 다른 미제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서울청 미제팀 직원 6명은 매일 오후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수사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민경욱 서울청 미제팀장은 “오래된 사건이 대부분이어서 주변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수사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이들에게 사건을 설명해주면서 동시에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수사 기법 보강으로 속속 사건 해결
미제팀은 팀 신설 이후 지금까지 23건의 중요 미제사건을 해결했다. 검거한 범인은 총 45명. 이들을 수사해 밝혀낸 여죄를 포함하면 미해결 사건 170건의 답을 찾았다.
김 반장은 해결사건 중 2003년 발생한 경기 동두천 영탑사 살인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다. 재수사를 통해 범인을 찾았지만 당시 범인이 캄보디아로 도주한 상황이라 수사가 장기화될 뻔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재수사 착수 시점에 해외에서 다리를 다쳤고, 자신이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치료차 입국했다가 검거됐다. 다소 운이 따른 사건이었다. 경찰은 이외에 강원 화천 노파 살인사건(2007년), 대전 아파트 주차장 부녀자 강도살인사건(2004년) 등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건도 미제팀 수사를 통해 밝혀냈다.
미제팀의 부족한 수사 인프라는 개선점으로 꼽힌다. 현재 전국 17개의 미제팀 직원은 50명에 불과하다. 미제팀당 4명도 채 안되는 인원으로 수사는 물론 수사 이후 재판 일정까지 챙겨야 한다.
경찰은 최근 미제사건 해결에 걸음걸이 분석, 혈흔 형태 분석 등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과거 폐쇄회로TV(CCTV)나 사건 현장 사진에서 새로운 사건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최현락 경찰청 수사국장은 “주요 해외 사례를 참고해 향후 전담인력을 증원하는 등 수사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라며 “여기에 DNA 분석 등 각종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경각심을 심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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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호 기자 ]
“정승찬 씨(실종 당시 33세) 매형되시죠? 잠시 경찰서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2월 최인철 씨(46)는 서울지방경찰청 중요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008년 실종된 처남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애타게 기다렸던 소식이었지만 반가움은 잠시였다. 아내 정은주 씨(43)와 함께 찾은 서울청에서 담당 형사는 “유감스럽게도 승찬씨가 살해당했다”며 “범인을 잡게 돼 연락드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했다. 범인은 승찬씨와 평소 지게차 운전을 함께하던 직장동료 박모씨였다. 함께 사업을 논의하다 다툼이 생겼고, 승찬씨가 살해당한 것이다.
승찬씨는 평소 가족을 아꼈다. 가족을 버릴 사람이 아니었지만 실종 이후 곳곳에서 “승찬이를 봤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가족은 그가 죽었다고는 생각지 못했고, 연락이 없는 그에 대해 원망만 키워갔다.
그가 사라진 세월 동안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살림만 했던 아내는 자식 셋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새벽까지 지게차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큰딸 성희(19)는 가출을 일삼다 고등학교 진학도 제때 하지 못했다. 큰아들 성호(16) 역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풀며 지냈다. 유일하게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승찬씨의 아버지는 “죽어야 우리 아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채 2011년 목숨을 끊었다. 승찬씨에게 지게차 운전을 처음 가르쳤던 인철씨는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이후 가족에게 느리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 은주씨를 찾은 조카 성호는 “아버지께 죄송하다”며 “앞으로 우리 가족은 제가 잘 돌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은주씨는 “뒤늦게나마 모든 것이 밝혀져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요 미제사건 45건 집중 재수사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피해를 보고, 범인이 누군지조차 모른 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장기 미제사건 피해자들.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지방경찰청마다 2011년 12월 설치된 ‘중요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하 미제팀)’이 2주년을 맞았다.
경찰청은 신설 2주년을 맞아 중요 미제사건 45건을 골라 내년 1월29일까지 집중 재수사에 착수한다. 수사 요청이 계속되고 있는 사건들 위주로 선정했다. 이 중 34건은 살인사건이다. 살인사건은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이 큰 점을 감안했다. 나머지 11건은 성폭력사건, 실종사건, 강도사건 등이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 수사를 위해 지난달 26일 각 지방청 미제팀 형사들을 모아 수사기법 등을 교류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집중 수사 기간에 서로 수사 정보를 공유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경찰은 사건 해결 시 특진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수사관들이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피해자 가족 아픔 보듬는다.
이번 집중수사에서 경찰청은 미제팀 신설 이후 처음으로 ‘수사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경찰이 끝까지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2003년 살인사건에서 조카 2명을 잃은 강석규 씨(53). 20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형의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생각했던 석규씨는 당시 무참하게 살해당한 조카들의 모습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 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현재 집중수사 45건에 선정됐다.
그동안 석규씨의 가슴에는 한이 생겼다.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아직 이 사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충격으로 또다시 좋지 않은 일이 이어질까 두려워서다. 어머니가 조카들을 자연스럽게 잊게 하기 위해 매년 명절이면 국내외로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나고 있다. “우리 손주가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을 그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 한다. 사건 이전 매년 찾았던 형의 산소를 찾지 못한 것도 벌써 10년째다.
석규씨는 이런 마음의 한을 시를 쓰며 승화시켜왔다. 그런 그에게 최근 김성용 서울청 미제팀 반장과의 통화는 새로운 위안이 되고 있다. 김 반장은 종종 석규씨를 찾아 안부를 묻고 그동안의 수사상황을 설명한다. 만나지 못할 경우 이틀에 한 번꼴로 꼬박꼬박 전화를 건다. 다른 미제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서울청 미제팀 직원 6명은 매일 오후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수사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민경욱 서울청 미제팀장은 “오래된 사건이 대부분이어서 주변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수사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이들에게 사건을 설명해주면서 동시에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수사 기법 보강으로 속속 사건 해결
미제팀은 팀 신설 이후 지금까지 23건의 중요 미제사건을 해결했다. 검거한 범인은 총 45명. 이들을 수사해 밝혀낸 여죄를 포함하면 미해결 사건 170건의 답을 찾았다.
김 반장은 해결사건 중 2003년 발생한 경기 동두천 영탑사 살인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다. 재수사를 통해 범인을 찾았지만 당시 범인이 캄보디아로 도주한 상황이라 수사가 장기화될 뻔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재수사 착수 시점에 해외에서 다리를 다쳤고, 자신이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치료차 입국했다가 검거됐다. 다소 운이 따른 사건이었다. 경찰은 이외에 강원 화천 노파 살인사건(2007년), 대전 아파트 주차장 부녀자 강도살인사건(2004년) 등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건도 미제팀 수사를 통해 밝혀냈다.
미제팀의 부족한 수사 인프라는 개선점으로 꼽힌다. 현재 전국 17개의 미제팀 직원은 50명에 불과하다. 미제팀당 4명도 채 안되는 인원으로 수사는 물론 수사 이후 재판 일정까지 챙겨야 한다.
경찰은 최근 미제사건 해결에 걸음걸이 분석, 혈흔 형태 분석 등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과거 폐쇄회로TV(CCTV)나 사건 현장 사진에서 새로운 사건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최현락 경찰청 수사국장은 “주요 해외 사례를 참고해 향후 전담인력을 증원하는 등 수사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라며 “여기에 DNA 분석 등 각종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경각심을 심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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