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빈집에는 추억이 산다

입력 2013-12-13 21:57  

"도시의 걱정 근심 잠시 내려놓고
아무도 살지않는 고향집에 내려가
빈집이 차려놓은 추억 먹고 싶어"

박형준 < 시인 >



겨울이 되면 고향집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의무적으로라도 사계절에 한 번씩 꼭 고향에 내려갔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몇 년 전부터 고향집이 보고 싶은데도 발길이 옮겨지지가 않는다. 가끔씩 형이나 누나들이 고향집에 들렀다 휴대폰으로 전송한 사진을 통해 고향집을 들여다 볼 뿐이다.

아마 고향집 장롱에는 이불이 그대로 들어 있을 것이고 낡은 냉장고도 방 한구석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몸이 쇠약해져서 인천의 형집에 계시다가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 6년을 보내셨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나빠져서 거의 움직이지 못 하는데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집에 가야 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 하셨다.

이미 나는 도시에 길들여져서 시골에 내려가면 삼사일도 채 안 돼 도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에는 하루종일 불안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도시는 나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집에서 뒹구는 휴일에는 불현듯 고향집이 그리워지고 기차표를 끊으러 역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도시에 살면 모든 것이 불안해서 그럴까. 아주 최근에 산 물건이라 할지라도 수년 내에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더욱 일에 매달리게 된다. 문화비평가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자유시간》에서 대부분의 자유시간이 업무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그는 자유시간도 일하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상업화의 원리를 따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긴 특별한 직업이 없는 나 역시 고향에 내려갈 때, 언제나 뭔가 쓸거리를 가지고 갔다. 오히려 고향집에 내려갈 때 일에 대한 강박관념이 더 커지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지낼 일주일의 여유조차 마련돼 있지 못하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난다 해도 아버지는 회사 걱정에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자기들 나름으로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가족 모습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연말이 되면 각종 송년회로 몸살을 앓고 뭔가 미진하게 생각되는 한 해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 더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들의 뇌는 너무나 많은 일처리로 빌 틈이 없는 쓰레기장과 비슷하다. 하루에도 수 시간을 인터넷에 매달리고 스마트폰를 사용하고 각종 일을 하는데도 어쩐지 우리의 기억은 쓰레기 처리장처럼 넓어지기만 할 뿐이다. 우리의 삶은 지나치게 풍부하고 충만하게 사람들과 기계들로 연결돼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갈수록 사소해지고 고독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겨울이 되고 연말이 돼 고향집이 그리워지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잊어버리고 싶기 때문인지 모른다. 세상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빈집이 내게 들려주는 추억을 받아적고 싶은 것이다.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빈집이 차려놓은 추억을 먹고 살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가 그토록 생의 말년에 돌아가고 싶어 하던 고향집. 그곳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지만 부모님이 건강하시던 때의 사진이 있고 이소룡처럼 뒷산에서 쌍절곤을 휘두르는 젊은 날의 형 사진이 있고, 이제는 취업 걱정을 하는 자식들을 둔 누님들의 어여쁘디 어여쁜 소녀시절이 있다. 나는 고향의 빈집 속으로 들어가 그 추억을 먹고 마시며 그 시간들을 현재에 아로새기며 가만히 있고 싶다. 겨울이 되면 고향집에 내려가 차디차게 식은 부엌의 아궁이에 불을 때며 그 불빛에서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고 모든 일에서 놓여나, 도시의 걱정 근심은 잠시 내려놓고 부엌 문 바깥으로 내리는 눈발을 가만가만 헤아려보고 싶다.

박형준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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