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많은 뉴스를 만들어낸 금융회사는 단연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이다. 연초부터 미공개 정보를 미국의 주총안건 분석기관(ISS)에 부당 제공해 파문을 일으켰다. 어윤대 KB금융 회장과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물러나면서 후임이 누가 될지도 한동안 관심사였다. 지난 9월엔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뉴스의 초점이 됐다. 지난달에는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까지 연이어 터졌다.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통합 국민은행이 탄생했던 2001년, 금융계의 기대는 엄청났다. 단숨에 세계 100대 은행(66위·총자산 기준)에 진입한 ‘초대형 리딩뱅크’가 생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과는 ‘아니올시다’다. 세계적인 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커녕, 국내에서도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에 추월당해 총자산 3위로 밀려났다.
감독당국의 손보기 '극성'
KB금융과 국민은행이 추락한 요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고경영자(CEO)의 탐욕과 그에 따른 감독당국의 ‘손보기’다. 초대 행장이었던 김정태 행장은 연임을 꿈꾸다 회계기준 위반으로 문책경고를 받고 꿈을 접어야 했다. 강정원 행장은 두 번씩이나 KB금융 회장직에 도전하다 감독당국의 눈 밖에 나 문책경고를 받고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 초대 KB금융 회장이던 황영기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손실로 ‘직무정지 3개월’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감독당국의 손보기는 국민은행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금융회사를 막론하고 ‘괘씸죄’에 걸려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장호 전 BS금융 회장을 반(半)강제로 쫓아냈다가 관치금융 부활이라는 역풍을 불러 일으킨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4대 천왕’ 손보기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기류가 강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당 금융회사에 검사를 나가 이명박 정부 때 ‘4대 천왕’으로 통했던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의 흠집을 잡아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영웅 만드는 문화 키워야
그 결과 김 전 회장은 검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미술품 구매를 통해 수상한 짓을 한 것으로 낙인찍혔다. 금융계의 전설로 통하던 김 전 회장의 이미지도 구겨져 버렸다.
금융권에서는 ‘4대 천왕’의 기세에 눌려 있던 감독당국이 정권이 바뀌자 보복을 하고 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감독당국의 말을 듣지 않고 날뛰다가는 반드시 보복이 가해지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꼽은 국내 금융산업의 세 가지 문제점-보신주의, 현상유지, 금융회사만의 리그-이 해결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도 비등하다.
새해를 맞는 금융인들은 우울하다. 이들에게 힘을 주려면 ‘영웅’이 필요하다. 영웅이 많이 나올수록 금융산업도 발전의 계기를 잡을 수 있다. 그러자면 영웅을 영웅으로 대하는 감독당국의 태도 변화가 필수적이다. 산적한 현안이 많은데도 이미 떠나간 영웅의 흠집내기에만 매달려 있는 감독당국에 그런 걸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새해를 맞으면 혹시나 달라질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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