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감면 체계 만들 때가
3년 임기 중 가장 힘들어
룰라처럼 지지받고 갔으면
[ 박신영 기자 ] 조준희 기업은행장(사진)의 얼굴은 밝았다. 전날 기업은행장 연임이 불가하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답지 않았다. 조 행장은 “무슨 자리이든지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한다”며 “(연임이) 되지 않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권선주 차기 기업은행장 내정 사실이 발표된 다음날인 24일 조 행장을 기업은행 서울 을지로 본점 집무실에서 만났다. 예상보다 표정이 좋다는 말을 건네자 “권 내정자로 인해 내부승진 전통이 세워진 것만 해도 정말 기쁘다”며 “촌놈이 서울 와서 행장까지 됐으면 이룰 것 다 이룬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포기도 생각했다”
조 행장은 임기 3년을 돌아봤을 때 금리감면 체계를 만들 당시가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조 행장은 지난 1월부터 가산금리 체계를 없애는 대신 등급별 상한선을 정한 뒤 감면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신용등급 12단계별로 연 4%대(최고 우량등급 기업)에서 연 9.5%(신용등급 최하위 기업)의 금리상한선을 정한 뒤 정부정책, 상품, 고객, 담보 등 네 가지 기준에 따라 금리를 깎아주는 방식이다. 그는 “기준이 잘못되면 몇 천억원이 손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두 달 동안 직원들과 밤샘 작업을 할 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방송인 송해 씨를 광고모델로 직접 발탁해 소매금융을 강화한 것을 가장 기쁜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이전엔 기업은행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며 “광고 이후 기업은행을 알아봐주고 개인 고객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조 행장은 향후 경영 여건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이 발표됐지만 지금의 저금리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조 행장은 “제가 떠나고 나서도 후배들이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어 나가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너야 한다’는 뜻의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를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룰라처럼 떠나고 싶다”
조 행장이 기업은행을 떠난 뒤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역시 그가 “지구상에서 가장 아낀다”고 표현한 반려견 ‘샤비’와 마음껏 놀아주는 거다. 말하는 도중 갑자기 지갑을 꺼내 기업은행이 최근 출시한 ‘참 좋은 내사랑 펫(PET) 카드’를 보여줄 정도다. 카드 겉면은 샤비의 사진으로 장식돼 있었다.
‘내 사랑 샤비’라는 문구도 보였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쉰 뒤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은행장에서 물러나도 여전히 날이 갈수록 새로워진다는 ‘일신우일신’의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후배 직원들에겐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처럼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남겼다. 조 행장은 “룰라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그만둘 때도 85%의 지지율을 얻었다”며 “우리 직원들도 그만큼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떠나 보내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룰라 전 대통령만큼은 아니어도 저를 보고 우리 직원들이 ‘저놈 은행 안 말아 먹고 떠났네’ ‘잘하진 못했어도 못하지도 않았다’고 얘기만 해줘도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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