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규제에 짓눌린 한국 경제
경쟁을 가로막는 걸림돌 걷어내
경제엔진 힘차게 작동하게 해야
안재욱 < 경희대 서울부총장·경제학 jwan@khu.ac.kr >
새해가 밝았다. 어제 떴던 태양이 다시 뜨는 것이지만, 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건다. 2014년은 갑오년으로 역동성과 진취성을 상징하는 말의 해다. 역사적으로 갑오년에는 커다란 변혁이 많았다. 1894년 양반과 상민을 가르는 신분제를 폐지하고 노비매매를 금지한 갑오개혁이 있었고 그보다 60년 이른 1834년엔 영국의 노예해방 선언이 있었다. 이런 에너지를 가진 갑오년에 한국 경제의 변혁과 역동성, 그리고 도약에 대한 희망을 걸어본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지지부진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정쟁과 경제민주화에 사로잡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쏟아낸 것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며칠 전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며 ‘2014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퀀텀점프(대도약)의 기적을 만들어보자”고까지 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정책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 말대로 한국 경제가 ‘퀀텀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산업혁명이 왜 영국에서 일어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사유재산권을 강화하고, 해외무역에서 정부가 허용한 독점을 와해시키고, 각 산업의 진입장벽을 제거해 경쟁을 촉진했다. 그러자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기업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정부와 길드에 의한 중상주의적 산업규제가 18세기까지 남아 있었다. 자연히 특혜와 독점, 정부 보조에 길들여진 기업들이 모험적 기술혁신이나 변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이 정말로 ‘퀀텀점프의 기적’을 만들고 싶으면 지금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 간 경쟁들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규제들을 철폐 또는 완화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은 경쟁을 제한하고 기업 활동을 억제하는 규제들을 양산해 왔다. 노동시장을 경직화하는 각종 정책들,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순환출자 규제, 일감몰아주기 규제, 하도급거래 규제강화 등 수없이 많은 조치들을 취했다. 퀀텀점프는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사회에서 이뤄지고, 창조적 파괴는 경쟁이 활발한 곳에서 일어난다. 경쟁이 억제되는 사회는 역동성이 떨어지고 정체될 뿐이다.
어느 나라나 제도와 자원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늘 존재했다. 영국의 산업혁명 과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업화로 손해를 보는 귀족과 기계화로 피해를 보는 수공업자들이 산업화의 확산에 저항하며 기계파괴 운동을 벌였다. 일명 러다이트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산업화가 잘 진행됐던 이유는 이런 저항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등은 저항에 부딪혀 결국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랫동안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특혜를 잃을 것을 우려하는 특정 집단이 저항하고 결국 승자가 된다면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고 정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특정 이해집단의 요구와 저항에 휘둘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교훈 삼아 정부와 정치권이 한국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 철학과 비전을 갖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말이 잘 달릴 수 있는 길은 가시밭길이나 자갈길이 아니라 시원하게 펼쳐진 초원이다. 우리의 대내 경제 환경은 지금 기업하기에 너무 어려운 가시밭길, 자갈길이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대외변수들도 녹록지 않다. ‘손톱 밑에 있는 가시’를 뽑는 정도가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가시와 자갈들을 제거해 말이 초원을 달리듯 우리 기업들이 잘 달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역동성과 변혁의 에너지가 충만한 갑오년에 정부와 정치권의 변화와 함께 한국 경제가 역동성을 되찾고 정말로 ‘퀀텀점프의 기적’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안재욱 < 경희대 서울부총장·경제학 jwan@khu.ac.kr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