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새해 덕담

입력 2013-12-31 21:25   수정 2014-01-01 03:44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조선 성종때 문신 성현(1439~1504)이 집필한 용재총화에는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민대생의 나이는 구십 살이었다. 정월 초하룻날 세배하러 온 조카 중 한 친구가 ‘원컨대 숙부께서는 백 살까지 누리십시오’라고 했다. 민대생은 ‘내 나이 구십 살인데 만일 백 살까지 누린다면 몇 살밖에 남지 않았다. 어찌 입의 복이 없기가 그렇기만 하냐’며 그 조카를 내쫓았다. 이를 눈치챈 다른 조카는 ‘원컨대 숙부께서는 백 살을 누리시고 또 백 살을 더 누리십시오’라고 말했다. 민대생은 이것이 진짜로 축원하는 것이라며 좋아했다.”

덕담(德談)은 상대방에 대한 기원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서로 건강과 성공을 빌어주는 덕담 나누기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풍습이다. 새해 덕담은 더욱 그렇다. 육당(六堂) 최남선은 언어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그대로 실현된다고 믿으면서 하는 말이 덕담이라고 설명했다. 문자가 아닌 언어에도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 일종의 언어주술적 시각에서 덕담의 연원을 설명한 셈이다. 육당은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새해 덕담은 “그렇게 되라”고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축하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덕담을 할 때도 “무엇무엇을 하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고 “올해에 부자가 되었다지” “올해 승진했다지” 등 과거형으로 말하면 소원이 이뤄질 수 있는 힘이 더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 조선시대 궁중에선 “세자가 가례가 이뤄졌다고 하니 감축하옵니다”라는 덕담들이 오고 갔다고 한다. 듣고보니 실로 그럴싸한 어법이다.

새해 아침 복조리 장사의 “복조리 사려”라는 말도 큰 덕담의 하나였다. 일반인들이 새해에 가장 많이 하는 덕담은 “건강하시라”는 인사다. “새해 복 많이…”는 주로 아랫사람에게 하는 덕담이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올해도 건강하시고 오래 사십시오”라는 덕담을 많이 올린다. “올해 결혼한다지” “올해 시험에 합격했다지” “올해 아들을 낳았다지” 등도 흔한 덕담이다.

하지만 이 덕담들은 정작 아랫사람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들이다. 설문조사에서도 “결혼해라”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덕담으로 꼽히고 있다. 대학생들도 “좋은 직장에 취업…”을 가장 듣기 싫어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SNS에도 덕담들이 넘쳐나고 있다. 올해는 갑오년 말띠해다. “한경 독자님, 새해에는 이런저런 소원을 모두 이루셨다지요.”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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