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원기 기자 ] “2003년 한국과 두바이가 똑같은 전략을 세웠습니다. 각각 동북아 지역과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물류·금융 허브가 되겠다는 거였죠. 10년이 지나 두바이는 목표를 초과 달성한 반면 한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사진)은 지난 10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10년 전 두바이와 한국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박 회장은 “개방, 고급화, 경쟁. 이 세 가지가 한국과 두바이의 운명을 갈라 놓았다”며 “한국 정부는 규제로 이 세 가지를 막았고, 두바이는 규제를 풀어 세 가지를 활성화시켰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대규모 규제 완화 발표에도 이 같은 양상이 되풀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 회장은 “최근 중국이 상하이자유무역시범구라는 걸 만들었다. 이제 시작했는데 의료와 교육 개방성은 우리보다 낫다”며 “10년 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개방과 경쟁에 대해 정부나 민간 모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카지노 설립도 안 된다, 의료시장이나 교육시장 개방도 안 된다, 이러면서 자꾸 규제를 한다”며 “하지만 세상은 이미 개방과 경쟁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막아봤자 산업만 죽이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서비스산업계를 대표하는 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으로서 그가 업계를 대표해 정부에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 1960~1980년대 제조업을 세계 일류로 키운 경제개발계획과 전략을 이제 서비스산업에 적용해 달라는 것. 그 전략은 바로 규제 완화를 통한 개방, 경쟁, 고급화다. 특히 한국의 제조업 신화는 수출주도형 성장전략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수입자유화 조치였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외국 상품들과 경쟁을 통해 한국 제품의 품질이 괄목상대할 정도로 좋아진 것을 서비스산업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
그는 “1970년대 이후 과자산업, 전기밥솥, 유통산업 등을 개방할 때마다 관련 산업이 다 죽는다고 난리쳤는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갔나 궁금하다”며 “개방해도 아무도 죽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해 살아남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2만달러짜리 서비스만 있으면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며 “스위스처럼 1인당 국민소득 6만7000달러짜리 국가가 되고 싶으면 금융·의료·교육·관광 등 서비스산업에서 평준화에 목매지 말고 고급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이 제조업을 통해 성장하는 시대는 이미 최소한 10년 전에 끝났다고 분석했다. 박 회장은 “1990년 제조업 일자리 수가 499만개였는데 2012년에는 410만개로 90만개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졌다”며 “서비스 산업에서 획기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지 않으면 이제 다음 세대들이 취직을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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