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순교자

입력 2014-01-14 20:29   수정 2014-01-15 03:43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한국인들도 자주 찾는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의 종점은 순교자 야곱의 무덤이다. 예수 12제자 중 첫 순교자인 야곱은 원래 이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 그 제자들이 야곱의 시신을 찾아 이곳 스페인에 묻었던 것이다. 산티아고는 성 야곱의 스페인어다. 이 무덤을 찾아가는 게 순례자의 길이요 참 순교(殉敎)의 의미를 깨닫는 길로 알려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이 길을 걷고 있다.

정치적 순교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종교적인 순교가 본래 의미다. 특히 기독교에서 순교는 각별하다. 하나님의 증거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자는 그의 수난 길을 걷는 것이 하나님께 받은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순교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도의 고문을 견뎌내거나 웃으면서 죽어갔던 것은 예수의 죽음을 따른다는 의지가 워낙 컸기 때문일 것이다.

순교로 인정받는 데에는 물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국가 권력이나 다른 종교단체의 박해를 받았어야 한다. 또한 뚜렷한 종교적 신념이 있는 공동체가 존재해야 하고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성서에선 죽음 자체보다 진리를 증거하는 것으로 순교를 해석한다. 그래서 순교자를 증거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교자를 장사 지낸 다음 일반적으로 그 묘 위에는 교회당이나 예배당 기념당이 세워졌으며 그 제단에는 순교자의 유물을 모시게 된다.

한국 가톨릭사에선 조선시대 박해를 받아 순교한 사람만도 1만명이 넘는다. 순교자를 많이 배출한 대표적 국가다. 이미 신유박해나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에서 순교한 103명은 지난 199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품위를 받았다. 성인은 순교한 사람 중 적어도 두 차례 이상 기적이 일어난 사람들이다. 아울러 올해에는 초기 순교자 125위가 성인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들을 추대하기 위해 한국을 방한할 것이라는 소식도 있다.

이번에 새 추기경으로 임명된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은 4대 조부모가 충북 진천에서 포졸들에게 잡혀 순교자의 제단에 피를 뿌린 독실한 가톨릭 집안 출신이라고 한다. 김수환 전 추기경도 그의 조부가 1828년 무진박해 때 목숨을 바친 순교자 집안 출신이다. 순교의 피가 결코 헛되지 않은 모양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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