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논의가 부쩍 늘었다. 장성택 처형에서 드러난 북한 체제 불안정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통일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통일이 되면 국가신용등급이 뛰어오르고 국가 브랜드 가치도 크게 올라갈 것이라는 등 희망적인 메시지가 쏟아진다. 이제 통일은 결코 먼 미래의 꿈이 아닌, 손에 잡힐 듯한 현실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만약 통일이 다가온다면 국토의 통합을 시작으로 하나의 국가와 정부를 이루는 정치통합, 그리고 경제통합의 순서로 이뤄질 것이다. 마지막 단계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역시 국민통합 내지 사회통합이다. 이질적인 체제와 이념 속에서 70여년간 따로 살아 온 남북한 주민 간 통합은 아마도 통일 한국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게 분명하다.
진영논리로 두 쪽난 대한민국
문제는 남북한 간 국민통합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당장 대한민국 내부 통합이 더 시급하다는 데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분열상은 일상적인 사회갈등으로 보아 넘기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쪽난 민심 사이에는 그 어떤 대화나 타협도 불가능하다. 특정 이슈에 대한 상대 진영의 반응은 물어보나 마나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상대의 답을 예상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깊은 골로 갈라져 있다.
보수와 진보 간 갈등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코레일이나 의료 민영화 찬반 논란을 지켜보면 도대체 누가 보수이고 진보인지조차 헷갈린다. 사실 이렇게 된 데는 논쟁거리의 진정한 속성에는 큰 관심도 없고 내용도 잘 모른 채, 그저 집권 여당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심리도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철도 민영화, 제주 해군기지 같은 문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부터 추진된 것들이다. 대놓고 이들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떠벌리는 이들 중 상당수가 지금은 이런 정책에 앞장서서 반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대선에 불복하는 일부 세력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권, 그리고 여기에 별 생각 없이 동조하는 대중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두 동강 내고 있는 셈이다.
지역감정보다 더한 사회갈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를 더욱 조장한다. 끼리끼리 여기에 모여 뒷골목 비밀대화라도 나누듯, 자기들만의 입맛에 맞게 선택되고 가공된 정보만을 교환하고 이를 토대로 스스로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한다. 어느새 상대 진영은 공공의 적이 되고 적을 공격하기 위한 온갖 괴담도 만들어진다. 뇌송송 구멍탁, 제왕절개 수술비 2000만원, 수도권 전철 요금 5000원과 같은 괴담이 다 그렇게 나왔다.
지역감정을 가장 고질적인 한국병이라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심하고 치유도 어려운, 그런 갈등이 우리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다.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국민 간 소통이 더 큰 문제다. 오죽하면 나라를 둘로 쪼개 따로 살자는 소리까지 나오겠는가. 통일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 통합이 더 급하다. 같은 맥락에서 통일헌법 제정을 둘러싼 소모적 논의도 지금은 할 때가 아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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