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날개 없는 수호천사

입력 2014-01-16 21:27   수정 2014-01-17 04:35

도움 주고 도움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
善을 움직이는 보이지않는 손 있는 듯

위철환 < 대한변호사협회장 welawyer@hanmail.net >



한파가 몰아쳐 수은주가 뚝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오래전의 사건이 있다.

폭설이 심하게 내린 다음날 아침이었다. 눈이 그치고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엉덩방아를 찧고 울상 짓는 꼬마도 있었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도 있었다. 내 오래된 차도 갑자기 몰아닥친 동장군 기세에 꼼짝 못하고 퍼져버렸다. 휴대폰이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응급전화를 할 수도 없고, 공중전화를 찾는다 해도 보험회사 직원이 오려면 족히 2~3시간은 걸릴 때였다.

중요한 재판 때문에 빨리 법정에 가야 되는데 차는 한길가에 퍼져 있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야속하게도 하얀 입김은 계속 흘러나오고 손과 발은 얼어 동상에 걸릴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나가던 정비업소 차량 한 대가 내 앞에 서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띤 호남형의 총각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가. 내 자동차의 보닛을 열어 부동액을 붓고 배터리를 임시 충전시키는 등 정비조치를 취해주었고, 덕분에 자동차 시동도 걸리게 됐다. 어떻게 부르지도 않은 정비사가 내 앞에 나타나 마치 수호천사처럼 문제를 해결하는지 신기해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총각 얼굴이 낯이 익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건물 인테리어 기술자로 일하던 남자가 영세 시공업자 밑에서 일용노동자로 일하던 중 건물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일이 있었다. 뇌를 다쳐 중환자실에서 며칠 사경을 헤매다가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했다. 문제는 그 피해자에게 처와 어린 자식 세 명 등 가족이 있는데 산재보험은커녕 장례비마저 부담스러운 딱한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유족이 너무 딱해 몇 날 며칠 궁리 끝에 여러 가지 방도를 마련해 망인의 처자식을 위해 피해배상금을 받아 건네줄 수 있었다. 물론 무료 봉사였다.

출근길 갑작스레 퍼진 내 차를 구해준 수호천사가 바로 그 남자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아마 선(善)은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상호작용하는 모양이다.

위철환 < 대한변호사협회장 welawyer@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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