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 분)가 백혈병에 걸리자 가족들의 삶에는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엄마 사라(캐머런 디아즈 분)는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성공한 변호사의 삶마저 포기하고 오직 케이트에게 집중한다. 하지만 케이트의 병세는 점점 악화돼 가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조직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 골수이식을 받는 것뿐이다. 기증 대기자가 수없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케이트 가족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지만 불행히도 이들의 조직은 맞지 않는다. 이때 의사는 부모보다도 형제의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이 높다고 귀띔한다.
국내에는 ‘쌍둥이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을 영화화한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앞부분이다. 이 영화는 아픈 언니의 치료를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동생 안나(아비게일 브레스린 분)가 자기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안나는 제대혈,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등을 케이트에게 주며 유년시절 대부분을 회복실에서 보내게 된다.
맞춤형 아기를 선택한 사라
2009년 개봉된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맞춤형 아기’가 부모를 고소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며 개봉 전부터 이목을 끌었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의도로 아이를 낳고, 아직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아이의 조직을 이용하는 것이 옳으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다. 안나는 피소 사실을 알고 흥분하는 엄마에게 “내 몸에 대해선 내가 결정하고 싶다”고 따진다.
장기이식은 공급은 제한적인 데 비해 수요가 절대적으로 큰 재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인구는 6월 말 현재 2만3000여명에 달하지만 최근 1년간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은 전체의 17%인 3900여명에 그쳤다. 급성 백혈병이나 악성림프종처럼 유전자가 일치해야 하는 혈액질환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형제자매의 경우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이 25%인 반면, 친족이 아닌 타인과 일치할 확률은 2만분의 1로 극히 낮다. 사라 역을 맡은 캐머런 디아즈는 인터뷰에서 실제 자신이 그 상황이었다면 기꺼이 맞춤형 아기를 가졌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기자 순위에 밀려 기증을 받을 수 없고, 가족 모두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아 조혈모세포도 이식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의사의 ‘맞춤형 아기’ 제안은 딸을 살릴 수 있는 사라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맞춤형 아기’는 아직 영화 속 이야기
사실 ‘맞춤형 아기’는 영화 속 의사의 말처럼 ‘공식적으로는 절대 제안할 수 없는 일’이어서 환자들은 기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가족뿐 아니라 모든 가능한 인맥을 동원해 검사를 받게 하거나 브로커를 통해 기증자를 구하고, 운 좋게 조직이 맞기만 하면 큰 웃돈을 주고 장기를 사게 된다. 현행법은 ‘누구든지 금전 또는 재산상의 이익, 그 밖의 반대급부를 주고받거나 주고받을 것을 약속하고 장기 등을 매매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기증자의 장기 적출비용 정도만 가격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 수준을 넘어서는 금전거래는 불법이다. 그러다보니 규제의 눈을 피해 장기를 불법 매매할 수 있는 암시장(black market)이 만들어진다.
통상 암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형성된다. 주로 정부가 가격규제, 특히 최고가격(ceiling price)을 정할 때 나타난다. 최고가격제란 정부가 특정한 상품의 매매가격을 시장에서 형성된 균형가격 이하로 강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아파트분양가상한제, 이자율상한제 등이 그 예다. 최고가격을 정해 놓으면 시장에서는 균형점을 벗어난 곳에서 매매가 이뤄지고 결국 공급부족(초과수요)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프1>에서 아무런 정부규제가 없다면 시장균형은 생산자의 공급량과 소비자의 수요량이 일치하는 E에서 형성된다. 시장균형가격은 Po이고 균형량은 Qo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 상품의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Pa에서 시행하면, 생산자의 공급량은 Qs로 감소하는 반면 소비자의 수요량은 Qd로 증가한다. 그렇다면 이때 ‘Qd-Qs’만큼의 공급부족(초과수요)이 발생한다.
상품을 구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Pb의 가격을 주고서라도 재화를 구입할 용의가 있고, 이때 형성되는 것이 바로 암시장이다. 재화는 설정된 최고가격은 물론 규제 전 가격인 Po보다도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장기나 담배, 술과 같이 가격 비탄력적인 재화라면 암시장이 형성될 이유는 더욱 충분하다. 즉,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암시장을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비탄력적 재화일수록 정책효과 확대
물론 이 이론에 따라 사라가 많은 돈을 들여도 원하는 장기를 제때 조달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거래의 비합리성, 불규칙성이 지배하는 곳이 암시장이기 때문이다. 암시장에서 정부의 규제로 인한 초과수요는 주로 선착순 판매를 통해 해결되고 있다. 대기자 순위대로 장기이식을 받는다거나 선착순으로 분양을 하는 방법, 경기 입장권을 사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밤을 새우는 행동 등이다.
판매자의 선호(seller’s preference)에 따라 배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용인하기 어렵고 거래에 지속성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조금 더 합리적인 방법은 배급이다. 전쟁 등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비재가 만성적으로 부족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도 1950년대에는 담배 석유, 1960년대에는 쌀 비누, 1970년대에는 마늘 고추 등의 배급이 이뤄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공급부족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최고가격제의 소비자 보호 효과는 어떻게 될까. 최고가격제에서 가격은 시장균형가격보다 낮은 곳에서 정해져야 효과가 있다. 이는 또 공급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커진다. 즉 공급이 비탄력적일수록 보다 높은 정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토지는 물리적으로 추가 공급이 불가능하다. 가격이 상승해도 공급을 늘릴 수 없어 토지는 완전비탄력적인 재화다. <그래프2>에서처럼 공급곡선의 기울기는 수직이다. 이 경우 최고가격제의 소비자 보호 효과는 빗금친 부분이 된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지혜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맞춤형 아기’나 ‘모녀 간 소송’ 등 사회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시종일관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한다. 안나가 부모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결국은 케이트가 안나에게 부탁한 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케이트는 자신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엄마를 보면서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케이트는 “내가 죽는 건 견딜 만한데 나 때문에 다른 가족이 죽어간다”며 안나에게 이식을 거부할 것을 요청한다.
사라도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병든 딸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함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마침내 이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을 선택한다. 케이트와 가족들은 오히려 현실로 다가오는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인다. 케이트는 지난 삶을 회상하며 가족과의 짧은 삶을 담은 사진첩을 엄마에게 선물로 건넨다. 첫 장엔 ‘언제나 날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다.
아무리 아파도 난 혼자가 아니야’란 글귀가 쓰여 있다. 삶의 종착역을 앞두고 병실 침대 위에 함께 누운 모녀는 슬픈 작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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