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 정치부 기자, 국회반장) 박지원 의원은 20일 기자들을 만나 “현재 공석중인 청와대 대변인에 나 만한 적임자가 있겠냐“며 “(시켜만 주면) 할 용의가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不通)’및 이정현 홍보수석에 가려진 청와대 대변인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박지원식’ 정치화법이다.
3선(14,18,19대)에 불과하지만, 박 의원 만큼 정치 스펙트럼이 넓은 현역 정치인을 꼽기는 힘들다. 정권교체로 여야의 당요직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비서실장과 장관 등을 두루 거쳤다. 권력의 부침에 따라 뇌물수수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것만 6차례. 번번이 정치생명을 연장하면서 그의 이름엔 ‘불사조’란 별명이 따라 붙는다.
박 의원은 속된말로 ‘말빨’이 좋다. 거침없는 말은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젊은 기자들도 듣는 즐거움을 느낄 만큼 그의 말엔 해학이 넘쳐난다. 42년생인 박 의원이 서청원 의원(43년생)보다 한살이 많지만, 그를 원로정치인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해 국가정보원 대선댓글 공방으로 여야가 극한대치상황으로 치달을 때 외곽에서 당 지도부를 지원사격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당 일각에서는 “박지원이 혼자 당을 떠받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박 의원의 가장 큰 공로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신당창당 선언 후 불어닥친 ‘안풍(安風)’을 상당부분 차단하고, 희석시킨 것이다.
안 의원의 신당창당은 열세인 야권을 분열시킬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의 더 현실적 고민은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의 신당 합류 가능성이다.
박 의원이 안철수 신당에 호감을 갖고 있거나, 참여를 저울질하는 모든 인사를 싸잡아 ‘기웃인사’로 정의한 것은 ‘안풍’의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다. 당적을 바꾼 기존의 ‘철새’와는 다르지만, ‘줏대’없는 ‘기웃인사’들은 신당의 ‘코드’와 맞을 리 없다는 정치적 함의까지 내포했다.
박지원의 ‘레토릭’은 집안단속에 어느 정도 효과를 냈다. 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할 정도로 ‘안풍’은 거셌다.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 호남지역지역이 지지율에서 그야말로 초토화될 정도로.
박 의원은 “‘안풍’이 선거 직전에 불었으면 참패했을 것”이라며 “곡성 등 한 두 군데 빼고는 광주 목포 신안 등의 여론이 완전히 안철수의 새정치로 넘어간 상황을 보니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지난해말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광주 호남지역의 당 지지율 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에 비해 2~3배까지 높게 나타났다.
‘안풍’을 막기 위해 박 의원 특유의 레토릭이 동원됐다. 촌철살인형 수사 뿐만 아니라 호남민심을 파고들기 위해선 김대중(DJ) 전 대통령까지 끌어들였다. 안철수 공격의 화두로 삼은 말은 “겉만 새정치이지, 들여다보면 구태정치의 표상”이라는 것이었다.
구태정치의 근거로는 안 의원이 고향인 부산이 아닌 야당 성향이 강한 서울 노원을 통해 국회에 손쉽게 입성한 점을 들었다. 부산 경남 등 여권 우세지역이 아닌 야권 강세인 호남지역을 신당 기반으로 삼는 것에도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안 의원의 지지율에 거품이 낀 점을 DJ 지지도와 비교하면서 공격했다. “대선 앞두고 50%, 현재 27% 가까운 지지율은 DJ가 야당 총재할 때와 똑같다”는 것. 박 의원은 “안철수가 DJ 만큼 한 것이 뭐가 있냐. 안철수 정치의 특징은 두 템포 세 템포가 느리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에 ‘필’꽂히는 스타일이어서 오래 못갈 것”이라고 호남 민심에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당(黨)이 무리 당을 쓰는 것은 끼리끼리 모여서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안철수 신당에는 민주당에서 안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뭐가 되겠냐”며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광주 호남지역의 안철수 신당 인기가 한 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백리서치에 따르면 민주당은 광주에서 34.0%의 지지도를 얻어 30.6%를 기록한 ‘안철수 신당’을 오차범위내에서 앞질렀다. 특히 전남에서는 민주당이 43.5%로 안철수신당(23.0%)을 크게 앞질러 민주당 지도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호남지역에서 ‘안풍’을 잠재운 것을 오롯이 박지원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다. 김한길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품을 팔면서 호남지역 사수 의지를 불태운 것도 민심을 돌리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호남의 ‘정치적 맹주’ 박지원의 역할이 컸다는데 이의를 다는 민주당 인사는 없다.
그는 지난해말 호남위기론이 떠돌 때 느닷없이 자신의 전남지사 차출론을 꺼내들었다. 까마득한 정치후배들이 현직에 있거나 출마대기 중이어서 오해도 많이 샀을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까지 “정치는 생물”이라는 묘한 말로 전남지사 출마 가능성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고 있다.
전남지사 출마를 내비친 것도 ‘안풍’을 차단하기 위한 정치속셈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기자에게 “개인적으로는 놀더라도 중앙에서 놀고 싶다”며 “(전남도지사) 출마 얘기가 나오면서 신당 합류인사 중 상당수가 전화해서 확인하고 접은 인사도 있다”고 귀띔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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