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바꿔야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2일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서 한 신년사다. ‘한계 돌파’를 키워드로 내세우며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버릴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 회장이 강조한 ‘한계 돌파’는 삼성의 현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인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어닝 쇼크’를 냈다. 8조3000억원이란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이는 직전 분기인 3분기의 10조1636억원에 비해 18.3% 줄어든 것이다. 영업이익의 70% 가까이를 벌던 스마트폰 사업이 커머더티(범용품)화하면서 더 이상 막대한 수익을 이어가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실제 이 회장이 신년사를 발표한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4.59% 떨어진 130만9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50만원을 넘던 것에 비하면 20% 이상 내린 것이다. 스마트폰과 함께 주력인 TV도 2010년부터 시장 정체로 마찬가지 상황을 겪고 있다. 게다가 80개에 달하는 계열사 가운데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두드러진 실적을 내고 있는 회사도 없다.
2010년 삼성그룹이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자해 50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며 야심차게 발표한 5대 신수종 사업인 태양광전지, 발광다이오드(LED), 자동차용 전지, 바이오, 의료기기에서도 아직 별다른 성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자동차용 전지 사업에서 BMW, 크라이슬러 등으로부터 수주에 성공해 나름의 성과를 보이고 있을 뿐 태양광전지는 사실상 사업을 접었으며 바이오, 의료기기 등도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삼성이 지난해 하반기 그룹의 10년 후 미래를 연구하는 삼성종합기술원의 핵심 인력을 삼성전자 사업부 등 현업 부서에 배치한 것은 내부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중장기 기술 방향을 연구하는 것보다 당장 돈벌이가 되는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종합기술원 전체 연구인력 1800여명 중 500~600명 정도가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해당 사업부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들 인력을 활용해 지난해 말 조직을 개편했다. CE(소비자가전) 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와 IM(IT모바일) 부문 무선사업부에 각각 차세대전략팀과 차세대제품개발팀을 만들었다. 차세대전략팀은 영상·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사업을, 차세대제품개발팀은 ‘갤럭시’ 이후 새로운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역할을 각각 맡고 있다.
이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불황기일수록 기회가 많으며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며 “핵심 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은 또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50조원가량을 투자해 새 먹거리를 찾는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14일 서울 더 플라자에서 열린 30대그룹 기획총괄 사장단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50조원 정도 투자하느냐”는 질문에 “그 정도(투자할 것)”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스마트폰의 커머더티화에 대비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스마트폰을 생산할 수 있는 베트남 생산기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 위주로 커지고 있는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해 고가 스마트폰 판매 감소를 메우기 위해서다.
2012년 삼성디스플레이를 독립시키고, 지난해 삼성SNS를 삼성SDS에 흡수합병시키고 삼성코닝은 코닝에 매각하는 등 전자 계열사의 사업 구조조정도 계속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시너지를 키우고 비용 효율성을 높여 떨어지는 수익성 하락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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