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점차 둔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 민간 시장조사 기관인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세계의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3년 연속 하락했다. 2008년 이후 이어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에다 제대로 된 구조개혁이 계속 지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5위(2012년 기준)인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그리스보다 낮은 세계 30위에 불과했다. 각종 규제 장벽에 가로막힌 서비스업 분야가 한국의 생산성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서비스업 규제를 풀어야만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선진·신흥국 모두 하락 추세
노동생산성은 일정량의 노동을 들여 얻을 수 있는 생산량을 말한다. 근로자 1인 혹은 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하는데 노동생산성이 좋아지면 기업은 같은 노동력을 투입하고도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기업의 이윤은 늘어난다. 최근 세계 경제는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계속해서 하락했다. 미국이 2년 연속 0.9% 증가에 그쳤고 일본은 2012년 2.3%에서 지난해 1.3%로 떨어졌다. 선진국 중에선 유럽만 2012년 0.1%에서 지난해 0.5%로 나아졌다.
신흥국도 개선 속도가 크게 둔화됐다. 중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11년 8.8%에서 지난해 7.1%까지 낮아졌다. 인도 역시 같은 기간 5.8%에서 2.4%로 반토막났다.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음에도 벌써부터 노동생산성 증가세가 느려지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 세계 평균 밑돌아
한국의 지난 3년간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 평균은 1.26%다. 세계 평균(2.03%)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근로자의 57.8%에 불과하다. 한국의 시간당 생산성은 32.3달러로 미국(67.3달러)의 48%에 그쳤다. 독일(57.4달러) 영국(51.4달러) 일본(43.8달러) 등 선진국은 물론 제조업 경쟁국인 대만(40달러)에도 밀렸다. 과도한 복지로 재정위기를 맞아 ‘게으른 국가’라는 지적을 받았던 그리스(29위)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 생산성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2위로 괜찮지만 서비스업 생산성은 최하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을 ‘고용의 저수지’라고 부른다.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가 줄면서 질 낮은 인력들이 끊임없이 서비스업으로 몰려가 고여 있다는 의미다. 의료·법률·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OECD 평균보다 연간 424시간이나 더 일할 정도로 과도하게 근로시간이 길다”고 지적했다.
#생산성 높여야 '저성장 늪' 탈출
낮은 노동생산성은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더욱이 지난해 1.7% 증가한 한국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1.1% 늘어난 데 따른 것이란 목소리까지 있다. 사실상 한국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제로라는 얘기다.
따라서 노동생산성 향상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서 탈피하기 위한 선행조건이라고 노동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1순위 과제로는 서비스업 부문의 규제 완화와 개방이 꼽혔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서비스업이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 것은 글로벌 경쟁에 대한 노출도가 낮고 각종 규제로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그는 의료 법률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전문가들은 OECD 국가 중 한국의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이 가장 낮은 이유로 그동안 정부의 세액공제 제도가 제조업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서비스업에 특화된 세액공제 같은 제도적인 지원책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동열 한국은행 전문연구원은 “노동생산성 결정 요인을 분석해보면 연구개발(R&D) 투자가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R&D 투자 활성화, 고정투자 확대, 경쟁 촉진 등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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