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출전 피겨선수 음악도 대리 작곡가 작품 '파문'
[ 박병종 기자 ] ‘현대판 베토벤’으로 불려온 일본의 인기 청각 장애 작곡가의 양심선언에 파문이 일고 있다. 1996년부터 18년간 돈을 주고 대리 작곡가를 써왔다고 5일 고백한 것이다.
히로시마 출신의 피폭 2세인 사무라고치 마모루(사진)는 35살 때인 1999년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세계적 걸작들을 쏟아내 미국 언론에 ‘현대판 베토벤’으로 소개되는 등 작곡가로서 명성을 날려왔다.
특히 그의 대표작 ‘교향곡 제1번 히로시마’는 2008년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주요 8개국(G8) 하원의장 회의 기념 콘서트에서 초연된 후 클래식 음악으로는 드물게 10만장이 넘는 음반이 판매되면서 대히트를 쳤다.
사무라고치는 이날 그동안 자신은 “악곡의 구성과 이미지만을 제안하고 나머지는 별개의 인물이 작곡한 것”이라며 “팬들을 속이고 관계자를 실망시킨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사무라고치의 자전적 수기에 따르면 그는 4살 때 피아노를 시작,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음대에 진학하지 못해 독학으로 작곡법을 익혔으며 17살 때 원인 불명의 편두통 등으로 청각 장애가 발병했다.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뒤에는 절대 음감과 손으로 느끼는 진동에 의존해 작곡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레지던트 이블’을 비롯한 비디오 게임 삽입곡을 만들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번 양심선언 파문의 불똥은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일본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다카하시 다이스케에게도 튀었다. 다카하시가 쇼트프로그램에서 쓰기로 한 사무라고치의 바이올린 소나티네 역시 대리 작곡가의 작품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NHK는 그동안 뉴스와 ‘NHK 스페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무라고치를 크게 부각시킨 데 대해 이날 시청자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사무라고치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쓴 레퀴엠을 토대로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작곡하고 초연자로 한국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택하기도 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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