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녕 나락으로 떨어질 건가

입력 2014-02-11 20:28   수정 2014-02-12 04:27

"안정성 비해 역동성 떨어지는 경제
교육·노동·금융 효율성 높이고
창업위험 분산할 장치 강화해야"

이창양 < KAIST 교수·정책학 drcylee@kaist.ac.kr >



한 나라의 경제를 평가하는 기준과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그중 하나는 경제를 안정성과 역동성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역동적인 경제를 이상적인 경제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어떤가.

우선, 우리 경제의 안정성은 상당히 높다고 봐야할 것이다. 2007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에도 잘 버텨왔고, 수출 등 대외 전선에도 별 이상이 없다. 전자, 조선, 자동차 등 대다수의 전통적인 기간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고, 세계적인 대기업도 다수 등장했다.

문제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경제개발기 이후 새롭게 성장한 대기업이 거의 없고,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과 같이 새로운 산업을 열면서 혜성처럼 등장해 초대형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더욱 없다. 그 결과 기존의 몇몇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집중 현상은 심화되고, 수출과 경제 규모의 증가 속도에 비해 일자리 창출 역량은 약화되고 있다. 이마저도 가격경쟁력과 노사관계 등을 이유로 해외생산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자동차의 50%와 휴대폰의 80% 정도가 해외에서 생산된다.

경제의 역동성이 부족한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활동에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개발기 이후 정부주도형 경제운용이 지속되면서 이미 상당한 규제가 형성됐다. 외환위기 이후 다소 완화되는 듯하다가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다시 규제가 급증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규제는 더욱 정치적이고 그 수가 증가할 것이다. 기득권이 고착화된 규제와 정치적 논리에 의한 규제가 얽혀 있는 한 경제의 활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둘째, 요소시장이 낙후됐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에는 창의적인 인적자원과 우수한 기능인력, 효율적인 금융 등의 생산요소가 필요하다. 이런 생산요소들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경쟁력 있는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경제의 역동성은 낮아진다. 이들 생산요소시장의 대표적인 분야가 교육, 노동, 그리고 금융이다. 이들 분야는 규제가 많고, 관치적 요소가 고착화됐으며, 경쟁에 덜 노출돼 있어 효율성이 낮은 분야다. 앞으로 이들 3대 요소시장의 개혁 없이는 경제의 역동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정책적인 과보호가 존재하는 경우이다. 경제적 약자로 인식되거나 정치적인 영향력이 커 오랫동안 과보호된 부문이 경제에 존재하면,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해당 부문은 물론 경제 전반의 역동성이 낮아진다. 중소기업 부문이 그 대표적인 예다. 창업을 지원하고 초기 중소기업을 육성해 튼튼한 기업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는 지나친 보호와 경쟁의 차단은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전반을 허약하게 한다. 특히 일자리는 주로 신생 창업기업과 대기업에서 창출되고, ‘나이 많은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 역량은 매우 낮다는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높아져야 하고, 창업 등 기업가적 활동에 수반하는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 특히 대기업의 사내 벤처를 촉진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대기업을 통해 자본 조달과 시장 개척에서의 위험을 분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엄연한 현실인 대기업 집단들을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창업 활성화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곧 상생이다.

청마의 해인 올해는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한 해가 돼야 한다. 창조경제도 결국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자는 얘기일 것이다. 이대로 가면 저성장-저복지-저활력 사회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있어야 한다.

이창양 < KAIST 교수·정책학 drcylee@kaist.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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