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인 브라질 최대갑부 레만 회장이 M&A 전문가
이 기사는 02월09일(00:0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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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M&A 역사상 역대 최고 차익(40억달러)을 거둔 오비맥주 매각의 주인공은 KKR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B인베브 또한 이번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브라질 최대 갑부로 자산만 163억달러에 달하며 ‘브라질의 워런 버핏’이라고 불리는 조르제 파울로 레만 AB 인베브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번 거래도 미완에 그쳤을 것이다.
◆올 7월부터 행사하기로 한 콜옵션 앞당겨
인베브그룹은 KKR-어피니티에 오비맥주를 매각한 이후에도 줄곧 재인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매
각 계약을 체결하면서 콜옵션 조항을 삽입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 되 살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한 것인데 재인수 가격은 EBITDA 대비 11배로 고정돼 있었다. 콜옵션 행사는 2014년 7월 이후부터였다.
2013년 초부터 인베브와 KKR-어피니티 실무진들 간에 콜옵션 행사에 대한 의견들이 오갔다. 그러던 차에 인베브는 2013년 말, KKR 등에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공식 통보한다. 계약보다 훨씬 앞당긴 셈인데 이에 대한 이유가 흥미롭다. 만일 7월까지 기다릴 경우 기준이 되는 EBITDA가 늘어날 수 밖에 없어 인베브로선 돈을 더 지불해야하는 처지였다. 실제 오비맥주의 EBITDA는 1년에 1000억원씩 늘어났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반기 기준으로 최소한 500억원이 늘어날 게 자명했다. 5억달러에 대한 11배와 5.5억달러에 대해 11배를 적용했을 때 가격 차는 수천억원에 달했다.
인베브는 2012년 6월 멕시코 시장 장악을 위해 그루포모델로를 인수했다. 그러고도 120억달러의 현금이 장부에 남아 있었다. 58억달러를 지불하기에 충분한 금액이 있던 셈이다. 올 1월 오비맥주 인수를 발표하면서 인베브는 “인수 대금은 보유 현금으로 지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베브가 콜옵션을 앞당겨 인수 금액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한국 기업 관행으로 보면 이같은 결정은 ‘쇼크’에 가까웠다. 한 대기업 임원은 “만일 18억달러에 팔릴 때 오비맥주를 사지 못했던 롯데에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58억달러라면 절대로 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베브는 사모펀드 뺨치는 M&A 고수
그렇다면 인베브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보유 현금이 많았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긴 하
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조르제 파울로 레만 회장이 어떤 사람인 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국내에 알려지기로는 2012년 6월께 브라질 최대 갑부였던 에이케 바티스타 EBX 그룹 회장이 보유 주식의 폭락으로 1위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레만 회장이 대신했다는 것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레만 회장은 좀 더 흥미로운 인물이다. 워런 버핏과는 막연한 사이로 2013년 초 하인즈를 280억달러에 공동 인수하기도 했다. 둘의 인연은 2008년에도 있었다. 인베브가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안호이저 부시를 52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것인데 워런 버핏은 안호이저 부시의 2대 주주로 17억2000만달러를 투자했었다. 인베브의 레만 회장이 안호이저 부시를 인수하기 전까지만해도 버핏은 안호이저 부시 주가 하락으로 1억달러 가량을 허공에 날릴 상황이었다. 레만 회장이 버핏의 명성에 흠집날 일을 없애준 셈이다.
이처럼 레만 회장은 워런 버핏처럼 전업 투자가로 시작해 막대한 부를 쌓은 인물이다. 버핏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버핏은 기업 경영에 간섭하기 보다는 순수한 가치 투자자로 성공을 거둔데 비해 레만 회장은 인수한 회사를 적극적으로 바꾸고, 혁신함으로써 기업가치를 키웠다. 그가 소유한 버거킹만해도 레만 회장이 인수한 전후로 경영 성과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맥주 업계에선 벨기에 맥주 회사인 인터브루를 비롯해 안호이저부시, 그루포모델로, 오비맥주 등 M&A를 통해 전세계 맥주 시장을 장악했다. 레만 회장이 이끄는 인베브그룹은 어찌 보면 KKR, 어피니티 못지 않은 M&A 분야 ‘프로’라는 얘기다. 실제 오비맥주 매각을 진행하면서 KKR과 어피니티쪽 사람들은 인베브의 탁월한 협상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결론적으로 KKR-어피니티 합작으로 이뤄낸 오비맥주 매각은 박영택 부회장이 늘 얘기하던 ‘운칠복삼’과 ‘고통 불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 거래였다. 가성소다 사건에다 국세청의 배당소득세 부과 등 사모펀드들로선 가슴철렁한 사건들도 많았지만 인베브라는 죽이 맞는 파트너를 만난 덕분에 이들은 전대미문의 차익을 거두며 오비맥주를 매각했다.
이 대목에서 사족 하나. 작년 말 양측의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을 무렵, 이철주 어피니티 대표와 조셉 배 KKR 아태본부 대표를 포함해 어피니티와 KKR쪽 6명(각각 3명씩)과 변호사 3명 등이 한데 모여 홍콩 센트럴 금융지구 거리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인베브와의 협상을 위해 시내 모처로 가던 중이었다. 마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그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KKR, 어피니티)가 한데 어울려 우르르 몰려 가는 걸 누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미 그들의 머릿 속엔 한국 M&A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자신감이 가득했던 셈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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