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2) 한국경제의 역사를 보는 눈

입력 2014-02-14 18:56  

글 싣는 순서 (총 34회 중 18~34회)

18.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양반과 노비
19. 조선후기의 농업의 발전방향: 광작경영과 소농경영?
20. 조선시대의 상업의 특성: 재정과 상업
21. 조선시대의 대외무역
22. 조선후기는 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있었는가?
23. 19세기 위기?
24. 개항과 근대의 시작
25. 개항기의 경제변화: 개방경제의 충격과 도전
26.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근대화와 국가의 역할
27. 대한제국의 재정과 정책: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인가?
28. 러일전쟁과 보호국화: 식민지배를 위한 제도 정비
29. 토지조사사업은 토지를 수탈하였는가?
30. 식민지기의 농업과 지주제
31. 식민지기의 공업화와 경제성장
32.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체제선택
33. 수출지향 공업화와 경제성장: 한국형 경제시스템의 형성
34. 연재를 마치며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놀랍게 변화하였다. 이것은 가까운 역사박물관 어디에서나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수많은 유물과 자료 중에 어떤 것을 골라서 전시를 하며, 장시간의 삶의 궤적을 책 한 권에 무슨 수로 요약할 것인가? 특히 경제사와 관련해서 어떠한 방법으로 경제적 변화를 측정할 것이며, 그러한 변화를 일어나게 만든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알려주는 지표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국내총생산(GDP)이다. 1년 동안 나라 안에서 생산된 최종 생산물(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합한 것이다. 최종생산물의 가치라고 한 것은 예를 들어 자동차 생산액을 GDP 계산에 포함시켰으면 자동차 만드는 데 들어간 타이어와 같은 부품의 생산액은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중복계산이 되어 부풀려지기 때문이다. 현재는 모든 나라가 GDP를 이용하여 경제적 성과를 파악하고 성장률도 계산해서 경제적 변화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GDP를 머릿수로 나누면 1인당 GDP가 되는데, 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생활형편을 알기에는 GDP보다 좋은 지표로 인정되고 있다.

경제 상황을 알려주는 GDP

오래 전의 과거에 대해서도 GDP와 1인당 GDP를 머릿속으로 생각해볼 수가 있다. 실제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러한 지표의 추산에 평생을 바친 Angus Maddison(1926-2010)과 같은 학자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1인당 GDP가 얼마였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경제사학자들의 공동작업으로 1911년부터는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김낙년 편, 『한국의 장기통계』, 2012) 정확히 1인당 GDP가 얼마였는지는 계산할 수 없다고 해도 다양한 방법으로 과거의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언제부터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를 알아내고자 애쓰는 중이다. 인구의 변화 추세를 확인하거나 임금과 지대의 추이를 살피는 것은 물론이지만, 성인의 키가 어린 시절의 생활수준을 잘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군인들의 신장 자료를 발굴하기도 하고, 무덤에서 유골을 측정한 자료를 활용하기도 한다.

경제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을 결정하는 요인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Y=f(L, K)와 같은 간단한 함수식으로 나타내어 국내총생산(Y)은 노동(L)과 자본(K)의 투입량에 의해서 결정됨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사람들이 얼마나 일(노동)을 하는가, 그리고 일을 할 때 자본(기계와 설비 등)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노동자가 손으로 도구를 이용해서 만들 때와 로봇을 이용하여 만들 때는 같은 시간에 만드는 자동차 대수에 큰 차이가 생기는 이치이다. 또한 같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도 기술이나 사회적 환경이 다르면 경제적 성과가 달라지게 되는데, 일반적인 경제학 분석에서는 기술이나 사회적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경제사와 같이 수십 년, 수백 년의 장기간의 경제적 변화를 다루는 곳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기술이나 사회적 환경이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기술이 경제적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식량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산에 불을 질러 한두 번 농사를 짓고 버려두었다가 나무가 자란 후에 돌아와 다시 불을 질러 농사를 짓는 경우와 조선시대와 같이 매년 농사를 짓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앙법이 보급되어 보리를 수확한 후에 모내기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한 해에 두 차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경우를 비교하면, 같은 면적의 토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양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공산품의 생산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부인들이 집에서 베틀에 앉아 손으로 옷감을 짤 때와 대규모 방직공장에서 자동화된 직기로 옷감을 짜는 것과는 엄청난 생산성의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예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산업혁명 전에 1파운드의 면사 방적에 500시간이 걸렸던 것이 1914년에는 20분으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경제적 성과 이끄는 기술의 힘

사회적 환경은 경제학에서는 제도(institution)라고 하는데, 법과 관습, 정치체제와 같은 것이다. 한 사회의 경기규칙(rule of the game)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제도는 무엇보다 재산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가 사람을 재산으로 소유하는 노예제 사회인가? 토지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가?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성과에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자기가 생산한 물건을 주인에게 모두 빼앗기는 노예가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기술을 고안하기 위해서 머리를 짜낼 리가 없을 것이다. 자기 땅을 소유하지 못하여 수확의 절반을 소작료로 내어야 하는 농민이 자기 땅을 가진 농민만큼 비료를 주거나 경지 정리를 할 리도 만무한 것이다. 국가가 거두어가는 조세의 부담이 커져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득이 줄기 때문에 소비와 투자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경제적 성과를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토지와 자본에 대한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는 시장경제체제인가 그렇지 않은 사회주의체제인가 하는 것도 경제적 성과에 중대한 차이를 낳게 될 것인데, 멀리 갈 것도 없이 남북한의 경제 수준을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경제적 변화를 파악하려면…

요컨대 한 시대의 경제적 성과와 생활수준 그리고 경제적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노동, 자본, 기술, 제도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1993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사학자 Douglass C. North(1920~)의 생각을 따라서 인구, 지식, 제도로 좀 더 요약할 수 있다. 노동을 포괄적인 인구로 대체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며, 자본(기계, 설비 등)과 기술은 결국 그 사회의 지식의 축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는 특히 인공적인 산아 조절이 거의 불가능하였던 전근대 사회에서 경제적 변화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요인이었다. 지식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접하는 환경 곧 자연과 사회의 실재(reality)에 근접하도록 만들어낸 인공적 구성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의 용어로 말하면 모형(model)이다. 실재에 대한 참된 인식은 인간의 능력 밖이지만, 지식이 실재에 얼마나 접근하는가는 그 사회의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느 사회는 환경의 불확실성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지식이 축적되고 어느 사회는 그렇지 못한가? 제도의 차이 때문인가? 그렇다면 제도의 차이는 왜 생기게 되는가? 질문이 여기에 이르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재호 <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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