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T, 세상을 바꾼다] 손목시계로 24시간 혈압 체크…혈관 속 나노센서가 질병 감지

입력 2014-02-17 21:22   수정 2014-02-18 03:51

병원 어떻게 바뀌나

병원 앱으로 내 질환정보 확인…처방전·필름은 모두 전산화
대형병원, 이미 스마트병원 변신

수술장면 구글글라스로 중계…24시간 관찰·기록·분석 가능
치료서 예방으로 패러다임 변화…맞춤형 진단·치료도 가능



[ 전설리 기자 ]
“청진기는 머지않아 사라질 것입니다.”

2011년 에릭 토폴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는 ‘모바일 헬스 서밋’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장내과 의사인 그는 “이미 최근 2년간 청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휴대용 초음파 기기를 꺼낸 뒤 셔츠 단추를 하나 풀더니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갖다 댔다. 심장 박동을 보여주는 초음파 영상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볼 수 있는데 왜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모바일 헬스 서밋은 정보통신기술(ICT) 발달에 따른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논의하는 행사다. 2009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시작돼 매년 열린다. 토폴 교수의 기조연설은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보건의료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임을 예고한다.

“청진기가 사라진다”

청진기와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쓰인 차트. 병원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런 풍경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대형 병원 대부분은 이미 스마트 병원이다. IoT 기술을 도입하고 있단 얘기다. 처방전과 필름은 자취를 감췄다. 모두 전산화, 영상화됐다.

검진을 예약하면 당일 아침 스마트폰을 통해 문자메시지로 알려준다. “오전 9시15분 내과 OOO 교수 검진 예약돼 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주차장에 들어서면 입구에 ‘제3주차장 123석’이라고 표시돼 있다. 접수를 마치고 진료실 앞에 도착하면 모니터에 내 차례가 뜬다. 기다리는 동안 병원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내 질환에 대한 정보는 물론 혈액검사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검진이 끝난 뒤 수납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무인수납기로 결제하면 된다. 병원 문을 나서면 문자메시지가 온다. “다음 외래는 6개월 후인 8월20일 수요일 오전 9시30분입니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국내 대형 병원은 이미 100% 스마트 병원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구글 글라스와 의료 혁신

스마트 병원은 의료와 IoT 기술 융합에 따른 혁신의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크리스토퍼 케딩 교수는 십자인대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 장면은 다른 곳에 있는 의료진과 의대생들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케딩 교수가 쓰고 있는 스마트 안경 구글 글라스를 통해서다.

구글 글라스는 일반인들로부터 ‘사생활을 침해하는 파파라치 기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다르다. 의료 혁신을 몰고 올 엄청난 기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의대생들에게 수술을 직접 보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하지만 좁은 수술실에선 어깨너머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구글 글라스는 이런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의사는 구글 글라스를 이용해 수술 중에도 환자의 정보를 불러내 확인할 수 있다.

수술실에서뿐만이 아니다. 구글 글라스를 끼고 직접 사진을 찍고 진단할 수 있다. 적절한 치료를 위해선 환자를 관찰·기록·분석해야 하는데 이 전 과정에서 구글 글라스의 활용도가 높다는 분석이다. 구글 글라스 앱 개발사인 오그메딕스의 이안 샤킬 대표는 “구글 글라스가 의사의 컴퓨터 작업 시간을 25%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를 위한 구글 글라스 앱도 개발 중이다. 당뇨병 환자가 앞에 있는 음식이 혈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글 글라스로 바로 확인하는 식이다.

의료 패러다임 바꾼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입는 컴퓨터)와 빅데이터 기술은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은 의사가 환자 개개인의 신체 상태를 24시간 모니터링하기 어렵다. 하지만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비롯한 IoT 기기가 발달하면 의사와 환자 모두 손쉽게 24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쌓이는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하면 새로운 질병 유형을 찾아내거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또 극히 초기 단계의 질환을 감지하거나 환자의 신체 변화와 상태에 맞게 다른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다. 통계로 도출한 획일적인 처방에 따른 부작용 등도 막을 수 있다. IoT의 발달로 치료에 초점을 맞춰왔던 의료 패러다임이 관리-예방-진단-치료로 확장되고 개인 맞춤형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란 얘기다.

토폴 교수는 “인간이라는 블랙박스의 규명은 이제 시작”이라며 “지금은 옷처럼 입거나 밴드처럼 붙이거나 손목시계처럼 착용하는 센서들이 나오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혈관 속에 넣을 수 있는 나노센서가 개발되면 모래알 크기의 작은 알갱이가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암 심근경색 등의 발생을 극히 초기 단계에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의학의 역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예방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 소장은 “IoT의 발달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 방법도 다양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질병에 걸려야 비로소 주로 약을 써서 치료하지만 미래엔 ‘질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 등을 미리 진단해 식이·운동 요법, 생활습관 교정 등을 통해 관리하고 예방하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 사물인터넷

IoT(Internet of Things). 유·무선 통신망으로 연결된 기기들이 사람의 개입 없이 센서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9년 케빈 애시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사물지능통신(M2M·Machine to Machine)이라고도 한다. 예컨대 스마트폰으로 전등과 TV를 켜고 세제가 떨어지면 세탁기가 쇼핑몰에 세제를 주문하는 식이다.

■ 만물인터넷

IoE(Internet of Everything). IoT가 확장된 개념. 유·무선 통신망으로 사물은 물론 사람 데이터 프로세스 등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지능적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특별취재팀 전설리(팀장)·심성미·김보영 IT과학부 기자·정인설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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