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수술 교과서 다시 써
구로병원엔 손가락 절단 환자 몰려
31시간씩 긴장 못 늦추고 접합수술
재즈에 빠진 '손 수술의 대가'
퇴근 늦어도 매일 음악감상 삼매경
해외세미나 땐 골프 대신 미술관行
[ 이준혁 / 은정진 기자 ] 김 원장은 손가락 접합 수술을‘성형수술의 꽃’으로 표현했다. 수술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가는 실로 1㎜ 굵기의 혈관과 신경을 이어 붙이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1987년 3월 어느날 밤, 고려대 구로병원에 성형외과 의사들을 응급호출하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응급실에서는 22세의 인쇄소 제본공이 피범벅인 손을 움켜쥐고 울부짖고 있었다. 책을 자르는 기계에 손가락 10개가 다 잘린 환자였다. ‘삐~, 삐~’ 비상호출이 끝없이 이어졌다. 급히 수술실로 들어선 서른다섯 살의 김우경 교수는 동물실험용 현미경을 보면서 손가락의 혈관과 신경을 이어갔다. 31시간에 걸친 혈투였다.
하루를 꼬박 넘긴 수술 뒤 제본공은 손을 되찾았다. 국내 의료계에서 처음으로 열손가락 접합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27년 후. 이 의사는 성형외과 의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학병원 의료원장으로 취임했다. ‘손 수술의 전설’로 불리는 김우경 고려대 의료원장(62)이다. 김 원장을 그의 단골집인 서울 이태원 베이징 덕 전문점 ‘마오(MAO)’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손가락을 가장 많이 붙인 의사
마오는 ‘베이징 덕(오리 화덕구이)’ 전문점이다. 그는 인터뷰 장소로 오리고기집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기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의사인 제가 보장하건대 병이 옮지도 않고 바싹 익혀 먹으면 전혀 무해하다”고 말했다. 외과의사답게 말에 군더더기 없고 힘이 있었다.
김 원장은 어린 게를 통째로 튀긴 요리와 고추를 튀겨낸 요리를 주문했다. 반주는 중국 맥주인 ‘칭다오’. 평소에는 술을 거의 하지 않지만 중국요리를 먹을 때는 한두 잔씩 한다.
김 원장과의 인터뷰는 손가락 접합 수술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원장은 손가락 접합 수술을 ‘성형수술의 꽃’으로 표현했다. 1㎜ 굵기의 혈관과 신경을 수술 현미경을 보면서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더 가는 실로 이어 붙이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젊었을 때만 해도 발로 페달을 밟아 수술 현미경의 화면을 조절해가며 수술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환자의 손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1980년대 구로공단은 손가락 잘린 환자들로 넘쳐났다. 고도성장의 한가운데 있던 구로공단 아니던가. 김 원장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환자를 수술했다. 나중에는 환자와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는 뜻이다.
열정 덕분에 그는 손가락 접합 수술 부문에서 대가가 됐다. 이 분야에서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 손가락 끝마디는 혈관이 0.3~0.5㎜에 불과해 접합 수술을 해도 성공률이 낮다. 잘렸을 때 그냥 놔두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김 원장은 여태껏 2000명에게 수술을 시도해 80% 이상의 성공률을 보였다. 그는 “새끼손가락이 잘린 지 54시간이 지난 어린이의 손가락 접합 수술에 성공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국내에선 처음이었다”며 “그 이후로 손가락이 잘린 지 8시간 이내에 붙여야 한다는 ‘황금시간(Golden Hour)’ 규칙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손가락 접합 수술을 비롯해 손목터널증후군 수술, 선천기형 등 온갖 종류의 손 수술을 다해봤다. 그에 따르면 환자의 20%는 다른 병원에서 수술했다가 부작용이 생겨 보낸 ‘2차 환자’들이었다.
그는 199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미국 수부학회에 참석해 열손가락이 모두 잘린 환자 8명을 수술한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한국의 성형외과 의사가 국제학회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수부재건외과학회 이사장, 대한미세수술외과학회 회장 및 이사장, 대한수부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음식이라도 스트레스없이 잘 먹어야”
그는 언뜻 보기에 60대 같지 않은 ‘동안(童顔)’이다. 가까이서 봐도 얼굴 주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보톡스라도 맞은 걸까’ 싶었다. 김 원장은 “평생 스트레스 없이 살아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원장은 오리고기와 채썬 파를 ‘첨면장’이라는 소스에 듬뿍 찍어 밀전병에 싸서 먹었다. 중국인 요리사들이 직접 만들어 현지 맛과 거의 비슷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식당 인테리어와 벽에 걸린 사진도 모두 중국에서 가져왔다.
김 원장은 2009년 고려대 구로병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구내식당부터 바꿨다.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한 것. 적자가 나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음식이라도 스트레스 없이 잘 먹이자는 취지였는데 모든 직원이 먹는 식단을 좀 더 풍성하게 하니 활기가 돌더라”고 전했다. 김 원장은 지난해 구로병원 30주년 기념식을 특별하게 준비했다. 학술대회, 교양강좌, 직원행사 등 전 직원 참여로 바꾼 것이다. 내부 직원은 물론이고 병원 청소·주차 용역 직원까지 모두 불렀다. 그랬더니 직원들끼리 소규모로 알아서 파티를 여는 게 아닌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지역 주민도 있었다. 김 원장은 “의료의 본질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건강한 신체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2년 임기의 고려대 의료원장을 맡은 김 원장은 낮은 의료수가와 경기 불황으로 의료계가 고전하는 속에서도 남다른 비전을 꿈꾸고 있다. 그는 “덩치 큰 대형병원이 아닌 진료와 연구가 뛰어난 베스트 병원이 앞으로 갈 길”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고려대병원은 지난해 매출 7100억원, 순이익 110억원을 올렸다. 그 힘에는 연구개발 투자가 있었다. 현재 매출의 8%를 임상·연구비로 쓰고 있다. 다른 대학병원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정부는 고려대병원 2곳(안암·구로병원)을 연구중심 병원으로 선정했다. 국내 병원 가운데선 유일하다. 김 원장은 “고려대의료원의 가장 큰 자산인 ‘사람’을 잘 키워내겠다”고 말했다.
“긍정적으로 집중해서 살면 건강해”
김 원장은 수술이나 병원 일을 할 때는 ‘외눈박이’처럼 한눈을 팔지 않는다. 그러나 취미는 다양하다. 최근엔 병원장 업무를 보면서 오후 10시 이후에나 귀가한다. 하지만 밤늦게 들어가서도 음악을 꼭 듣는다. 사실 그는 오디오업계에서 소문난 ‘오디오 마니아’다. 큰 방을 ‘개인 음악실’로 꾸며 50년 이상 묵은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로 재즈와 실내악 음반을 감상한다. 이 때문에 지금도 남들보다 적게 자는 편이다.
김 원장은 “재즈의 매력은 연주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음악에 잘 녹아 있고 서로 앙상블을 맞춰서 연주하기 때문에 어느 음악보다 즉흥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남들이 취미를 자주 묻는데, 음악과 그림 보는 걸 즐긴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해외 세미나에 가서 시간이 남으면 남들은 골프를 치러 가지만 난 꼭 미술관에 들르는 버릇이 있다. 머리가 상쾌해진다. 평생 치매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고교 시절 음악과 함께 명화·사진잡지 보는 것을 즐겼던 김 원장은 원래 건축학과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의대 바람이 분 데다 중앙고와 같은 재단인 고려대가 우석대 의대를 합병하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가족들의 권유도 있어 결국 고려대 의대를 선택했다.
입학 후에는 연극반 산악반 등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김 원장은 “그때의 경험들이 나중에 환자를 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환자들의 인생을 100%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오리고기를 먹은 뒤 식사 메뉴로 김 원장은 짜장면을 추천했다. 면발이 유난히 얇고 부드러워 요리 뒤에는 항상 짜장면을 즐긴다고 했다.
그는 “보양식보다는 잘 먹고 잘 자고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해도 제대로 집중하는 것이 좋다”며 “일에 몰두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우경 원장의 단골집 마오 中 베테랑 요리사의 베이징 덕·샤부샤부 '훠궈' 일품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자리잡은 ‘마오(MAO)’는 오리고기의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베이징 덕 전문점이다. 식당 이름은 마오쩌둥의 ‘마오’에서 딴 것이다. 중국 5성급 호텔 및 유명 음식점에서 데려온 4명의 베테랑 주방장이 현지 방식대로 오리를 요리한다. 얇게 썬 오리고기와 파를 밀전병에 싸 첨면장이라는 소스를 듬뿍 찍어 먹는 베이징 덕은 바삭하게 씹히는 고소함이 일품이다. 중국식 샤부샤부 ‘훠궈’도 추천 메뉴 중 하나다. 양고기뿐 아니라 소고기, 돼지고기, 해물까지 준비돼 있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베이징 덕 요리는 3만3000~5만8000원. 해물 훠궈 5만6000원(2~3인용), 소고기 훠궈 2만6000원, 양고기 훠궈 2만4000원. 휴무 없이 일요일에도 정상 영업한다.(02)793-8845
이준혁/은정진 기자 rainbow@hankyung.com
구로병원엔 손가락 절단 환자 몰려
31시간씩 긴장 못 늦추고 접합수술
재즈에 빠진 '손 수술의 대가'
퇴근 늦어도 매일 음악감상 삼매경
해외세미나 땐 골프 대신 미술관行
[ 이준혁 / 은정진 기자 ] 김 원장은 손가락 접합 수술을‘성형수술의 꽃’으로 표현했다. 수술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가는 실로 1㎜ 굵기의 혈관과 신경을 이어 붙이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1987년 3월 어느날 밤, 고려대 구로병원에 성형외과 의사들을 응급호출하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응급실에서는 22세의 인쇄소 제본공이 피범벅인 손을 움켜쥐고 울부짖고 있었다. 책을 자르는 기계에 손가락 10개가 다 잘린 환자였다. ‘삐~, 삐~’ 비상호출이 끝없이 이어졌다. 급히 수술실로 들어선 서른다섯 살의 김우경 교수는 동물실험용 현미경을 보면서 손가락의 혈관과 신경을 이어갔다. 31시간에 걸친 혈투였다.
하루를 꼬박 넘긴 수술 뒤 제본공은 손을 되찾았다. 국내 의료계에서 처음으로 열손가락 접합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27년 후. 이 의사는 성형외과 의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학병원 의료원장으로 취임했다. ‘손 수술의 전설’로 불리는 김우경 고려대 의료원장(62)이다. 김 원장을 그의 단골집인 서울 이태원 베이징 덕 전문점 ‘마오(MAO)’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손가락을 가장 많이 붙인 의사
마오는 ‘베이징 덕(오리 화덕구이)’ 전문점이다. 그는 인터뷰 장소로 오리고기집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기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의사인 제가 보장하건대 병이 옮지도 않고 바싹 익혀 먹으면 전혀 무해하다”고 말했다. 외과의사답게 말에 군더더기 없고 힘이 있었다.
김 원장은 어린 게를 통째로 튀긴 요리와 고추를 튀겨낸 요리를 주문했다. 반주는 중국 맥주인 ‘칭다오’. 평소에는 술을 거의 하지 않지만 중국요리를 먹을 때는 한두 잔씩 한다.
김 원장과의 인터뷰는 손가락 접합 수술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원장은 손가락 접합 수술을 ‘성형수술의 꽃’으로 표현했다. 1㎜ 굵기의 혈관과 신경을 수술 현미경을 보면서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더 가는 실로 이어 붙이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젊었을 때만 해도 발로 페달을 밟아 수술 현미경의 화면을 조절해가며 수술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환자의 손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1980년대 구로공단은 손가락 잘린 환자들로 넘쳐났다. 고도성장의 한가운데 있던 구로공단 아니던가. 김 원장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환자를 수술했다. 나중에는 환자와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는 뜻이다.
열정 덕분에 그는 손가락 접합 수술 부문에서 대가가 됐다. 이 분야에서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 손가락 끝마디는 혈관이 0.3~0.5㎜에 불과해 접합 수술을 해도 성공률이 낮다. 잘렸을 때 그냥 놔두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김 원장은 여태껏 2000명에게 수술을 시도해 80% 이상의 성공률을 보였다. 그는 “새끼손가락이 잘린 지 54시간이 지난 어린이의 손가락 접합 수술에 성공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국내에선 처음이었다”며 “그 이후로 손가락이 잘린 지 8시간 이내에 붙여야 한다는 ‘황금시간(Golden Hour)’ 규칙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손가락 접합 수술을 비롯해 손목터널증후군 수술, 선천기형 등 온갖 종류의 손 수술을 다해봤다. 그에 따르면 환자의 20%는 다른 병원에서 수술했다가 부작용이 생겨 보낸 ‘2차 환자’들이었다.
그는 199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미국 수부학회에 참석해 열손가락이 모두 잘린 환자 8명을 수술한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한국의 성형외과 의사가 국제학회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수부재건외과학회 이사장, 대한미세수술외과학회 회장 및 이사장, 대한수부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음식이라도 스트레스없이 잘 먹어야”
그는 언뜻 보기에 60대 같지 않은 ‘동안(童顔)’이다. 가까이서 봐도 얼굴 주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보톡스라도 맞은 걸까’ 싶었다. 김 원장은 “평생 스트레스 없이 살아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원장은 오리고기와 채썬 파를 ‘첨면장’이라는 소스에 듬뿍 찍어 밀전병에 싸서 먹었다. 중국인 요리사들이 직접 만들어 현지 맛과 거의 비슷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식당 인테리어와 벽에 걸린 사진도 모두 중국에서 가져왔다.
김 원장은 2009년 고려대 구로병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구내식당부터 바꿨다.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한 것. 적자가 나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음식이라도 스트레스 없이 잘 먹이자는 취지였는데 모든 직원이 먹는 식단을 좀 더 풍성하게 하니 활기가 돌더라”고 전했다. 김 원장은 지난해 구로병원 30주년 기념식을 특별하게 준비했다. 학술대회, 교양강좌, 직원행사 등 전 직원 참여로 바꾼 것이다. 내부 직원은 물론이고 병원 청소·주차 용역 직원까지 모두 불렀다. 그랬더니 직원들끼리 소규모로 알아서 파티를 여는 게 아닌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지역 주민도 있었다. 김 원장은 “의료의 본질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건강한 신체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2년 임기의 고려대 의료원장을 맡은 김 원장은 낮은 의료수가와 경기 불황으로 의료계가 고전하는 속에서도 남다른 비전을 꿈꾸고 있다. 그는 “덩치 큰 대형병원이 아닌 진료와 연구가 뛰어난 베스트 병원이 앞으로 갈 길”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고려대병원은 지난해 매출 7100억원, 순이익 110억원을 올렸다. 그 힘에는 연구개발 투자가 있었다. 현재 매출의 8%를 임상·연구비로 쓰고 있다. 다른 대학병원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정부는 고려대병원 2곳(안암·구로병원)을 연구중심 병원으로 선정했다. 국내 병원 가운데선 유일하다. 김 원장은 “고려대의료원의 가장 큰 자산인 ‘사람’을 잘 키워내겠다”고 말했다.
“긍정적으로 집중해서 살면 건강해”
김 원장은 수술이나 병원 일을 할 때는 ‘외눈박이’처럼 한눈을 팔지 않는다. 그러나 취미는 다양하다. 최근엔 병원장 업무를 보면서 오후 10시 이후에나 귀가한다. 하지만 밤늦게 들어가서도 음악을 꼭 듣는다. 사실 그는 오디오업계에서 소문난 ‘오디오 마니아’다. 큰 방을 ‘개인 음악실’로 꾸며 50년 이상 묵은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로 재즈와 실내악 음반을 감상한다. 이 때문에 지금도 남들보다 적게 자는 편이다.
김 원장은 “재즈의 매력은 연주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음악에 잘 녹아 있고 서로 앙상블을 맞춰서 연주하기 때문에 어느 음악보다 즉흥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남들이 취미를 자주 묻는데, 음악과 그림 보는 걸 즐긴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해외 세미나에 가서 시간이 남으면 남들은 골프를 치러 가지만 난 꼭 미술관에 들르는 버릇이 있다. 머리가 상쾌해진다. 평생 치매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고교 시절 음악과 함께 명화·사진잡지 보는 것을 즐겼던 김 원장은 원래 건축학과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의대 바람이 분 데다 중앙고와 같은 재단인 고려대가 우석대 의대를 합병하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가족들의 권유도 있어 결국 고려대 의대를 선택했다.
입학 후에는 연극반 산악반 등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김 원장은 “그때의 경험들이 나중에 환자를 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환자들의 인생을 100%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오리고기를 먹은 뒤 식사 메뉴로 김 원장은 짜장면을 추천했다. 면발이 유난히 얇고 부드러워 요리 뒤에는 항상 짜장면을 즐긴다고 했다.
그는 “보양식보다는 잘 먹고 잘 자고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해도 제대로 집중하는 것이 좋다”며 “일에 몰두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우경 원장의 단골집 마오 中 베테랑 요리사의 베이징 덕·샤부샤부 '훠궈' 일품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자리잡은 ‘마오(MAO)’는 오리고기의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베이징 덕 전문점이다. 식당 이름은 마오쩌둥의 ‘마오’에서 딴 것이다. 중국 5성급 호텔 및 유명 음식점에서 데려온 4명의 베테랑 주방장이 현지 방식대로 오리를 요리한다. 얇게 썬 오리고기와 파를 밀전병에 싸 첨면장이라는 소스를 듬뿍 찍어 먹는 베이징 덕은 바삭하게 씹히는 고소함이 일품이다. 중국식 샤부샤부 ‘훠궈’도 추천 메뉴 중 하나다. 양고기뿐 아니라 소고기, 돼지고기, 해물까지 준비돼 있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베이징 덕 요리는 3만3000~5만8000원. 해물 훠궈 5만6000원(2~3인용), 소고기 훠궈 2만6000원, 양고기 훠궈 2만4000원. 휴무 없이 일요일에도 정상 영업한다.(02)793-8845
이준혁/은정진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