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시도 직후가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집으로 그냥 돌려보내면 큰 일 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교도소에서 자살분석·방지 담당 심리분석관으로 8년째 근무 중인 제이 최씨(사진)의 조언이다. 대구정신건강증진센터의 자살예방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최씨는 28일 기자와 만나 ”24년간 자살예방 전도사로 활동한 경험을 자살율 세계 1위국인 한국에 전수했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씨는 “대부분의 자살은 자살시도 위급상황이 1차적으로 지난 뒤 약 3개월 이내에 발생한다”며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환자의 심신이 회복돼 원래 계획했던 자살시도를 다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운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자살시도가 무산됐더라도 단순히 “괜찮습니까”라며 당시의 순간적인 상태만 확인해서 귀가조치해선 안된다. 그는 “자살시도자는 정신건강 측면에서 응급환자에 해당한다“며 “반드시 강제로라도 응급병동으로 데려가는 것이 자살예방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모든 경찰관들은 심리치료 자격증을 갖고 있다. 경찰관들과 정신건강 전문 치료사, 정신과 의사·간호사들은 자살고위험군으로 판단한 사람에 대해 72시간 관련 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캘리포니아 주법에 의해 인정받은 이들 전문가들은 법조항 ‘5150’이라는 진단매뉴얼에 따라 특정인을 정신질환자로 판단한 경우 즉각 수갑을 채워 카운티마다 한 곳씩 개설된 치료 병원으로 이송시킬 수 있다. 그는 ”생존권이 인권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미국인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산타클라라 교도소에서 최씨의 가장 중요한 임무도 재소자의 자살예방이다. 수용인원이 4000명 가량인 이 교도소에선 1년에 2건 정도 자살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난해는 심리치료 효과 덕인지 한 명도 자살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씨는 자살자의 약 80%는 사전에 신호를 보낸다고 설명했다. 자살관련 정보가 있는 인터넷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거나 “죽고싶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자기를 학대하는 것도 자살에 대한 전조다. 그는 “대부분 자살시도자들은 진정으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대안을 찾을 수 없어서 자살을 선택한다”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자살하기 위해 권총을 발사하거나 기차나 차량에 뛰어드는 미국인들과 달리 한국에선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례가 많다”며 “고층건물 유리창의 미닫이 폭을 좁히는 등 낙하방지 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한 예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한국도 자살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다양한 기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자살시도가 발생했을 때 긴급히 대처할 수 있는 통일된 매뉴얼과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이민후 UC버클리 대학을 나온 최씨는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1990년 대학원 시절부터 정신건강분야 치료와 상담치료센터 운영 등 지금까지 한우물을 파왔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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