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에 가까운 중도파 아니냐" 질문에
李 후보자 "한번 보시죠" 여운 남겨
[ 김유미/김홍열/이심기 기자 ]
새로운 총재를 맞이하는 한국은행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경기와 가계부채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는 ‘기준금리 딜레마’가 있다. 금융위기 5년 만에 출구전략을 시도하는 선진국, 금융불안으로 살얼음을 딛는 신흥국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할지도 고민이다. 신임 한은 총재로 지명된 이주열 전 부총재가 ‘경륜과 전문성’을 무기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경기부양 vs 신흥국 불안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까지 9개월째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다. 국내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미국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섣불리 변화를 취할 수 없다는 진단에서다. 정부는 내수활성화를 통해 경기회복 속도를 끌어올리려고 하지만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경기와 가계부채 딜레마는 현재 한은이 처한 최대의 난제”라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주된 통화정책 수단이 기준금리라고 할 때, 이를 올리면 가계부채는 잡을 수 있어도 막 살아나기 시작한 경기가 위축되기 쉽다.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집집마다 빚을 내면서 가계부채 폭탄을 키울 수 있다.
통화정책의 방정식은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0~1%대에 그쳤던 물가상승률이 하반기엔 들썩일 가능성이 있는 데다 신흥국 불안이 재연되면 자금 유출 충격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 본부장은 “이주열 한은 총재 후보자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중앙은행을 이끌게 됐다”며 “시장에서 바라는 것은 설명 가능한 통화정책”이라고 말했다.
◆통화정책 신뢰 높아질까
전문가들은 김중수호(號) 금통위의 통화정책에 점수가 후하지 않았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도 통화정책이 그다지 신축적이지 못했다”며 “중앙은행의 경기 판단과 수장의 실행력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것이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통화정책 담당자로서 직접 겪었던 이 후보자가 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조 연구위원은 “최소한 경기와 금융시장에 대한 판단은 더욱 정확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와 공조를 어떻게 다질 것인가도 관심사다. 한은 출신인 이 후보자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정부와 엇박자를 낼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많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 출신은 경기보다 물가를 중시하는 ‘매파’에 가깝지만 이 후보자는 꼭 그렇진 않다”며 “금융위기 당시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정부와의 협조도 원만했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한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를 매파에 가까운 중도파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총재와 부총재는 당연직 (금통)위원이기 때문에 기관의 의견을 대변한다”며 “한번 보시죠”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시장은 ‘소통회복’ 기대
시장과의 소통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과제다. 지금까지 한은은 통화정책 방향에서 일관적인 메시지를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며 “시장심리를 잘 이해하는 이 후보자가 그런 면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기전망과 적정 금리에 대한 중앙은행의 판단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시장이 통화정책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새 총재가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길 기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김중수 총재는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글로벌 중앙은행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며 “하지만 국내 위상 면에서는 부족한 게 많아 직원들의 불만이 높았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 혁신, 중앙은행 세계화 등 김 총재의 성과는 이어가되 전체 직원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채워가야 한다는 기대다.
김유미/김홍열/이심기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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