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서 ‘하늘빛 우렁쌈밥’을 운영하던 최모씨(50)는 지난 3일 가게 문을 닫았다. 식탁과 의자, 식자재 기구 등을 재활용 업체에 보내면서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2011년 5월에 가게를 인수해서 메뉴를 바꿔보기도 하고 별짓을 다해 봤는데 결국 3년을 못 채웠네요.” 그는 ‘얼어붙은 경기’를 탓했다. 월 3000만원은 벌어야 임대료(800만원), 관리비(350만원)와 직원 월급 등을 주고 다만 몇 푼이라도 건질 수 있는데 최근 몇 달은 적자였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수서역 사거리에 있는 ‘한솔문구’는 인근에 수서초, 수서중, 세종고를 두고 있는 ‘목’ 좋은 가게다. 그러나 15년 된 이곳도 폐업을 앞두고 있다. 주인 김모씨(64)는 “목만 좋으면 뭐합니까. 오늘이 개학날인데도 실내화와 노트로 겨우 5만원어치 팔았어요. 임대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라고 하소연했다. 대형마트가 인근에 널려 있고, 학교마다 교보재를 단체 구입하기 때문에 동네 문구점에 오는 사람이 없다는 설명이다.
동네 가게, 年 83만개 문 닫아
동네 가게들의 위기다. 2011년 기준으로 종업원 10인 이하 소상공인 점포 수는 총 283만개. 전체 사업체(347만개)의 82%다. 그야말로 한 집 걸러 분식집 치킨집 노래방이다.
동네 점포는 개업도 많이 하지만 문도 많이 닫는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연평균 98만개가 새로 문을 열고, 83만개가 문을 닫았다. 여는 만큼 문 닫는 집도 많다는 얘기다.
문제는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업 점포 수는 2010년 98만8000개에서 2012년 95만6000개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폐업 점포 수는 80만개에서 83만3000개로 늘었다. 창업자는 줄고, 폐업자가 늘어나는 전형적인 ‘불황’의 모습이다.
지난해 자영업자들의 평균 수입을 조사했더니 월 187만원으로 나왔다. ‘100만원 이하’라고 답한 응답자도 6명 중 1명꼴(17.8%)이었다. 10명 중 1명(9.2%)은 적자 또는 무수입이라고 답했다. 자영업자 세 명 중 한 명은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답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설문조사’ 결과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항상 죽는 소리’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최근 점포 폐업 추이를 보면 이런 수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벤처 정책 '올인' 안돼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부터 굵직굵직한 벤처·중소기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 덕에 벤처업계엔 ‘봄바람’이 불고, 중기업계엔 ‘중기 대통령 제대로 하고 있다’는 칭송이 나온다.
그러나 소상공인 업계는 여전히 찬바람이다. 지난해 동네 자영업자를 위한 종합대책은 한 차례도 없었다. 새해 업무보고에서도 빠졌다. 5월께 발표한다지만 진행 상황이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강조하니 예산도 그쪽에 치중된다. 창업·벤처 부문 예산 증가율(24.9%)은 소상공인 쪽(8.8%)을 압도했다.
소상공인 업계 종사 인원은 555만명이다. 2509만명에 이르는 경제활동인구 5명 중 1명은 동네 점포서 일한다. 이들의 성업 여부는 일자리 유지나 중산층 복원이라는 정부 경제정책 목표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중소기업 정책이 창조경제에만 쏠려서는 안된다. 기업 생태계의 뒤안(소상공인)도 꼼꼼히 챙기는 균형이 필요하다. 성공한 ‘중기 대통령’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수진 중소기업부 차장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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