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하나에도 1000번의 망치질
벌건 쇳덩이 두들기다 보면 땀이 송골송골
[ 최병일 기자 ]
장인들에게는 무언가 다른 향기가 난다. 충북 충주에는 오랜 세월 대장간을 묵묵히 지켜온 대장장이가 있다. 그가 두들긴 것은 쇳덩어리만이 아니다. 물질주의와 일회용품에 물든 세상에 맞서 세월을 녹이고 있다. 추억을 찾아 떠나는 대장간 여행을 떠나보자. 아이들에게도 귀한 체험의 기회가 될 것이다.
스무 번의 담금질과 1000번의 망치질
벌겋게 달궈진 화로 앞. 탕, 탕, 망치질하는 소리가 마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하다. 일흔다섯 의 나이가 무색하게 육중한 망치를 들어 모루를 향해 내리치는 어깨에 기운이 넘친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망치를 놓지 않은 충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야장 김명일 씨(충북 무형문화재 13호). 대장간을 뜻하는 한자 풀무 야(冶), 장인을 뜻하는 장(匠)이 합쳐진 야장은 우리말로 대장장이다. 요즘은 대장간을 만나기 어렵기도 하지만 옆에서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 달군 쇳덩어리로 도구를 만드는 그에게 ‘장인’이라는 호칭이 붙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작은 호미 하나를 만드는 데 스무 번 가까운 담금질과 천 번이 넘는 망치질이 필요하다. 손잡이를 끼우는 슴베 작업을 하고 마무리하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기계로 찍어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노력과 시간, 정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고관대작의 안방에 걸리는 장식품도 아니고 값 나가는 물건도 아니지만, 모루에 올려 놓고 모양을 잡아가는 동안 눈빛에 흐트러짐이 없다. 때로는 거침없고, 때로는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러운 망치질 소리는 묵직하면서도 변화무쌍하다.
요즘은 공장 기계를 통해 몇 분 만에 수십 개씩 물건들이 쏟아지지만, 김씨의 삼화대장간에 똑같은 물건은 없다. 모두 하나하나 손으로 제작한 명품이기 때문이다. 호미며 낫, 칼은 물론이고 쇠스랑과 긁개 같은 농사 도구부터 소의 목에 거는 도래, 문고리, 화로 같은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원래 대장간 자리에서 누리장터의 현대식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가 만들어낸 물건들은 화로와 모루 앞을 지킨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한결같이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다.
삼화대장간, 튼튼하기로 유명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과 상처마저 보듬어준 시간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마차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재미 삼아 풀무질을 배웠고, 1953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근 대장간 일을 거들며 용돈을 벌고 취직도 했다. 다른 일을 하리라 마음 먹고 입대했지만 육군 무기 보급창에 배치돼 또다시 철을 녹이고 두드리며 3년을 보냈다. 야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오는 동안 호기롭던 청년은 백발이 되었지만, 여전히 망치를 들고 모루 앞에 선다. 아버지의 마차 공장에서 사용하던 모루며 바이스 같은 도구와 연장도 함께 나이를 먹었지만,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가보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장간도 이제는 힘겹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농번기가 되어도 사람들은 값싼 중국산을 찾는 것이 현실이다. 손님이 적어도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물건을 만드는 이유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가 만든 농사 도구를 써본 사람은 평생 단골이 된다. 몇 번 쓰면 부러지고 자루가 빠지는 중국산 제품과 달리 삼화대장간의 물건은 튼튼하기로 유명하다.
대장장이 체험 인기 코스로 부각
대장간에 오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망치질 체험도 하고, 앙증맞은 호미를 기념품으로 선물하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대장간을 직접 보고 쇠를 두드리는 이색적인 체험을 하기 위해 일부러 대장간에 오는 여행자도 많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삼화대장간이 있는 달천변을 따라 대장간이 많았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충주에서 생산되는 것 중 으뜸으로 철을 꼽았을 만큼 충주에는 철이 많았다고 한다. 백제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제철 유적지도 여러 곳에서 발굴됐다.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우수한 철제 무기로 아홉 번 중 여덟 번을 승리한 곳도 충주로 알려졌다.
여행팁
▲가는길: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 IC→중원대로 따라 약 9㎞ 이동→문화사거리에서 시청·시의회 방면 좌회전→삼원로터리에서 직진→대봉교 건너 우회전→누리장터 주차장
▲묵을 곳:‘필림 37.2’(043-842-0515)는 굿스테이 지정 업소로 시설이 깔끔하다. 계명산자연휴양림(gmf.cj100.net)은 신선한 자연을 느끼며 아침을 맞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다만 주말에는 방을 잡기 어려우니 미리 예약해야 한다. 호암대로에 있는 호텔 더베이스(043-848-9900)도 추천할 만하다.
▲먹을 곳:금능가든횟집(043-848-5101)의 송어·향어회가 맛있다. 황태해장국은 맛나밥집(043-852-9590)이 잘한다.
▲주변 볼거리:탄금대,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충주 미륵대원지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벌건 쇳덩이 두들기다 보면 땀이 송골송골
[ 최병일 기자 ]
장인들에게는 무언가 다른 향기가 난다. 충북 충주에는 오랜 세월 대장간을 묵묵히 지켜온 대장장이가 있다. 그가 두들긴 것은 쇳덩어리만이 아니다. 물질주의와 일회용품에 물든 세상에 맞서 세월을 녹이고 있다. 추억을 찾아 떠나는 대장간 여행을 떠나보자. 아이들에게도 귀한 체험의 기회가 될 것이다.
스무 번의 담금질과 1000번의 망치질
벌겋게 달궈진 화로 앞. 탕, 탕, 망치질하는 소리가 마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하다. 일흔다섯 의 나이가 무색하게 육중한 망치를 들어 모루를 향해 내리치는 어깨에 기운이 넘친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망치를 놓지 않은 충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야장 김명일 씨(충북 무형문화재 13호). 대장간을 뜻하는 한자 풀무 야(冶), 장인을 뜻하는 장(匠)이 합쳐진 야장은 우리말로 대장장이다. 요즘은 대장간을 만나기 어렵기도 하지만 옆에서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 달군 쇳덩어리로 도구를 만드는 그에게 ‘장인’이라는 호칭이 붙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작은 호미 하나를 만드는 데 스무 번 가까운 담금질과 천 번이 넘는 망치질이 필요하다. 손잡이를 끼우는 슴베 작업을 하고 마무리하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기계로 찍어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노력과 시간, 정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고관대작의 안방에 걸리는 장식품도 아니고 값 나가는 물건도 아니지만, 모루에 올려 놓고 모양을 잡아가는 동안 눈빛에 흐트러짐이 없다. 때로는 거침없고, 때로는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러운 망치질 소리는 묵직하면서도 변화무쌍하다.
요즘은 공장 기계를 통해 몇 분 만에 수십 개씩 물건들이 쏟아지지만, 김씨의 삼화대장간에 똑같은 물건은 없다. 모두 하나하나 손으로 제작한 명품이기 때문이다. 호미며 낫, 칼은 물론이고 쇠스랑과 긁개 같은 농사 도구부터 소의 목에 거는 도래, 문고리, 화로 같은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원래 대장간 자리에서 누리장터의 현대식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가 만들어낸 물건들은 화로와 모루 앞을 지킨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한결같이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다.
삼화대장간, 튼튼하기로 유명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과 상처마저 보듬어준 시간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마차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재미 삼아 풀무질을 배웠고, 1953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근 대장간 일을 거들며 용돈을 벌고 취직도 했다. 다른 일을 하리라 마음 먹고 입대했지만 육군 무기 보급창에 배치돼 또다시 철을 녹이고 두드리며 3년을 보냈다. 야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오는 동안 호기롭던 청년은 백발이 되었지만, 여전히 망치를 들고 모루 앞에 선다. 아버지의 마차 공장에서 사용하던 모루며 바이스 같은 도구와 연장도 함께 나이를 먹었지만,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가보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장간도 이제는 힘겹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농번기가 되어도 사람들은 값싼 중국산을 찾는 것이 현실이다. 손님이 적어도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물건을 만드는 이유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가 만든 농사 도구를 써본 사람은 평생 단골이 된다. 몇 번 쓰면 부러지고 자루가 빠지는 중국산 제품과 달리 삼화대장간의 물건은 튼튼하기로 유명하다.
대장장이 체험 인기 코스로 부각
대장간에 오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망치질 체험도 하고, 앙증맞은 호미를 기념품으로 선물하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대장간을 직접 보고 쇠를 두드리는 이색적인 체험을 하기 위해 일부러 대장간에 오는 여행자도 많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삼화대장간이 있는 달천변을 따라 대장간이 많았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충주에서 생산되는 것 중 으뜸으로 철을 꼽았을 만큼 충주에는 철이 많았다고 한다. 백제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제철 유적지도 여러 곳에서 발굴됐다.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우수한 철제 무기로 아홉 번 중 여덟 번을 승리한 곳도 충주로 알려졌다.
여행팁
▲가는길: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 IC→중원대로 따라 약 9㎞ 이동→문화사거리에서 시청·시의회 방면 좌회전→삼원로터리에서 직진→대봉교 건너 우회전→누리장터 주차장
▲묵을 곳:‘필림 37.2’(043-842-0515)는 굿스테이 지정 업소로 시설이 깔끔하다. 계명산자연휴양림(gmf.cj100.net)은 신선한 자연을 느끼며 아침을 맞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다만 주말에는 방을 잡기 어려우니 미리 예약해야 한다. 호암대로에 있는 호텔 더베이스(043-848-9900)도 추천할 만하다.
▲먹을 곳:금능가든횟집(043-848-5101)의 송어·향어회가 맛있다. 황태해장국은 맛나밥집(043-852-9590)이 잘한다.
▲주변 볼거리:탄금대,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충주 미륵대원지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