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풀어도…부담금에 묶인 '5조 투자'

입력 2014-03-16 22:11   수정 2014-03-17 04:19

한경 기업 신문고 - 이런 규제 없애라

"땅값의 4배 내라" 여수산단 증설 또 발목
여천NCC 등 6社중 5곳, 투자 전면 보류
'정상추진' 보고한 정부도 당황



[ 김우섭 기자 ] “대통령까지 나서서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겹겹이 쳐진 규제 그물망 때문에 투자를 전면 보류했습니다.”(여수국가산업단지 입주 기업 관계자)

전남 여수산업단지는 공장 설비 사이로 곳곳에 ‘섬’처럼 자리 잡은 녹지가 36㎢(여의도 면적의 12배)에 달한다. 여천NCC를 비롯해 산단 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2009년부터 파이프로 공장들이 연결되는 산업 특성을 고려해 녹지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정부에 수차례 요청했다. 녹지규제를 완화해야 공장을 증설할 수 있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5년여가 흐른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2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 문제를 푸는 방안이 나왔다. 산단 내 녹지를 해제해 공장을 짓도록 하는 대신 인근에 대체 녹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기로 했다.

여수시도 나섰다.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에 따르면 산단에 필요한 녹지 비율이 10~13%지만 여수산단의 녹지 비율은 12.43%였다. 여수시는 이 비율을 10%까지 낮춰 70만㎡에 이르는 추가 공장용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천NCC를 비롯한 6개 기업은 공장 신·증설 계획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여천NCC는 회사 땅인 녹지 13만5000㎡를 공장용지로 바꾸는 개발계획을 전남도에 신청했다. 기획재정부는 기업들의 계획대로라면 5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대책이 나온 지 8개월 지났지만 투자하기로 했던 6개 기업 가운데 5곳이 최근 투자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왜일까.

지난해 10월 녹지규제가 풀린 후 이번에는 인허가 과정에서 물어야 할 각종 부담금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 녹지를 공장용지로 허가해주는 조건으로 토지 원가의 3~4배를 각종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는 독소조항이다. 부담금에는 대체 녹지 조성비와 개발이익환수금(지가 상승분의 50% 국가 귀속), 대체산림 조성비, 생태계 보전비 등이 포함된다.

여천NCC는 이런 부담금을 고려하면 공장을 증설하기 위해 주변 공장용지 토지 조성비(150억~200억원)의 5배에 달하는 75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497억원)과 맞먹는 금액을 공장용지 조성비로만 추가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공장 건설비 절감과 운영 효율성을 감안하더라도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여천NCC는 결국 55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그동안 녹지 해제를 줄기차게 요청했던 다른 기업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여수시와 협의해 공장면적 조정까지 마쳤던 6개 기업 가운데 여천NCC 외에 4개 기업이 부담금 탓에 투자를 미뤘다. GS칼텍스만 5000억원 투자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애초 기대한 6개 기업의 전체 투자액은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여수산단 입주 기업 관계자는 “전남도는 처음에는 대체 녹지 조성비만 내면 된다고 얘기했다가 막상 녹지 규제가 완화되니 이런저런 부담금을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부담금을 낼 경우 평당 50만원이면 충분한 토지 조성비가 200만원 이상으로 뛰는 것이어서 공장 증설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지난해 9월과 12월 열린 3, 4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여수산단 녹지규제 해제 안건은 ‘정상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던 정부였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각종 부담금의 근거가 되는 ‘산업단지관리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는 등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체 녹지 조성비와 개발이익환수금을 동시에 부과하는 현행 법을 고쳐 둘 중 하나만 내면 되도록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법 개정안이 국회를 거쳐야 하는 것은 또 다른 관문이다. 일부에서는 녹지 해제에 반발하는 시민단체 등이 ‘대기업 특혜’라며 반대운동에 나설 경우 산지법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와 맞물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법 개정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강흥순 여수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녹지는 오염물질 확산 방지와 정화, 화재나 폭발 때 사고 확산을 막는 방호막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관련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6월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관련 규제 유지를 공약으로 적극 내걸 수 있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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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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