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0년 이후 알려진 모든 영어단어의 파생어까지 등재한 옥스퍼드사전이 최근 개정판을 통해 새 단어 900개를 추가했다는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보도입니다. 영국언어학회가 작업을 개시한 지 71년 만인 1928년, 41만4825개의 단어를 수록해 첫 선을 보인 옥스퍼드사전은 현재 1년에 4차례 정도 개정판을 발표하지요.
타임지에 따르면 옥스퍼드사전이 이번에 추가한 영어단어는 여자가 미모로 남자를 홀려 상대의 정보를 빼내는 술책인 '허니 트랩 (honey trap)'과 '베스트 프렌드 (best friend)'의 축약어로 보이는 '베스티' (bestie)가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또 손 입 목을 이용해 힙합음악 소리와 리듬을 흉내 내는 사람인 비트박서 (beatboxer)도 사전에 실렸습니다.
책 읽기나 모으기에 열심인 사람을 말하는 ‘부커홀릭’ (bookaholic), 축구에서 우리말로 ‘가위차기’로 불리는 묘기에 가까운 ‘시저스킥’ (scissor-kick)도 포함됐고요. 특히 몸에 기를 불어넣어주거나 동기를 부여한다는 의미로, 미국 명문 듀크대 신입생인 포르노 여배우 벨 녹스가 첫 포르노 촬영의 소감을 표현하면서 사용해 더욱 유명해진 임파워링 (empowering)도 이번에 정식 단어로 등재됐습니다.
옥스퍼드사전이 이번에 추가한 새 단어 가운데 ‘허니’ (달콤한 꿀)과 ‘트랩’ (덫, 올가미)란 서로 상반된 낱말이 조합된 ‘허니 트랩’이 가장 눈길을 끄는데요.
이 단어는 특히 미국 NBC방송이 지난 2월 9일 전 미국 중앙정보국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을 통해 단독 입수한 기밀문건을 토대로 “영국 정보기관 정부통신본부 (GCHQ)가 ‘더러운 수법’을 사용했다”고 폭로하면서 이 수법 가운데 하나로 ‘허니 트랩’을 언급하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 때 허니 트랩은 미인계를 통해 첩보 대상을 끌어들여 협박하는 것으로 풀이됐으며 GCHQ가 ‘인터넷 데이트’ 상대로 가장해 상대를 속이고 ‘실제 만남’까지 이어지도록 했다는 식으로 보도됐습니다. 이 방식은 ‘조건만남’과 유사하다는 평가입니다.
때문에 허니 트랩은 우리말로 ’미인계(美人計)‘란 말이 가장 적절한 번역어란 분석입니다. 각종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허니 트랩은 근자에 등장한 단어는 아닌 듯 합니다. 예컨대 이런 쓰임새가 있습니다.
“The classic example of the 'honey trap' would be Delilah, who seduced Samson, discovered the secret of his strength, and sold it to an enemy. [고전적 '미인계'의 사례로 삼손을 유혹해 그의 힘에 관한 비밀을 알아낸 뒤 적에게 넘긴 데릴라를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옥스퍼드사전이 허니 트랩을 정식으로 등재한 이유로 “쉽사리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단어”란 의미를 담은 게 아닌가 하는 분석입니다. 그동안 영어 표현으로 ‘미인계’를 뜻하는 낱말이 없진 않았던 까닭입니다. 명사로 ‘오소리’ 동사로 ‘조르다, 계속 묻다’는 뜻의 ‘badger’와 ‘game’이 결합돼 ‘미인계’로 쓰여 왔다고 합니다. “pull a badger game.(미인계를 쓰다)”식이지요.
아무튼 21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옥스퍼드사전에 공식 입문한 ‘미인계(美人計)’란 단어는 동양에서는 역사성이 꽤 깊습니다. 이는 춘추시대 ‘한비자 (韓非子)’의 글에서 유래했고 병법 36계 중 31계가 바로 그것인 실정입니다.
미인계는 특히 춘추시대 말기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유명한 월나라 왕 구차가 오나라 왕 부차에게 써 먹은 전략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구차는 자신 아버지를 죽인 부차에게 복수하기 위해 초선, 양귀비, 왕소군과 더불어 중국 4대 경국지색 미인으로 불리는 ‘서시’ (西施)에게 춤 예절 화장법을 가르쳐 받칩니다. 서시에게 홀딱 빠진 부차는 주지육림에 빠져 몰락의 길에 들어서고요.
이번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된 허니 트랩은 주로 정치인들이 인기(票)를 얻기 위해 내놓는 정책 ‘포퓰리즘 (票풀리즘)’의 결과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러시아 속담 “공짜는 쥐덫 위에만 놓여 있다”는 뜻이고요.
무상 또는 공짜로 포장된 포퓰리즘의 정책은 시간이 흐른 뒤 반드시 ‘후유증’을 몰고 온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무상급식 전면 시행 후폭풍으로 인해 예산 부족을 겪고 있는 서울시 교육당국이 최근 교사들의 희망퇴직 중지와 신규 교사의 임용을 전면 중지한 사례가 지적됩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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