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청와대만이 아니었다. 장관쯤 행차하는 현장회의라도 기획되면 관료들은 시나리오 짜기에 바빴다. 진짜 토론을 하자면서도 발언자 순서 정하고, 민원인이 눈치 없이 분위기 망치는 말이라도 마구 늘어놓지나 않을까봐 미리부터 듣고 또 들었다. 어떻게든 ‘그림’ 좋아보이는 쪽에 장관이 자리 잡았고, 엄선한 현장의 관계자들은 엑스트라처럼 그 주변에 세워졌다. 행사장에 거둥한 장·차관이 은근히 폼나면서 행사장 분위기 좋게 연출하는 솜씨들은 영화감독의 직업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었다. 수십명 또는 그 이상으로 행사가 커질수록 더 그렇고 방송 카메라가 출동하는 날엔 더욱 유난을 떨었다. 의전이 매끄러울수록 언어는 겉돌기 시작한다.
규제혁파 회의까지 이래선 곤란하다. 마라톤 회의가 되더라도 이번에 제대로 한번 본질을 토론하고 원칙을 재정립하자는 게 대통령이 끝장토론을 생각한 이유일 것이다. 국민들에게 비칠 모양새나 다듬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어전회의’가 됐으니 풀까 말까 좌고우면해온 묵은 민원 한두 개를 각 부처에 급히 수소문하는 식이어선 결과가 뻔해진다. 당장의 속도보다도 규제의 근본 문제를 논의하고 방향부터 정립해야 한다. 그러자면 사례도 중요하지만 분석은 더 중요하다. 좀 어수선해보이면 어떻고, 음성이 높아지는 난상토론이어도 좋다. 3시간이든 5시간이든 온국민과 100만 공무원이 다 듣도록 아예 생중계 회의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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