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태 기자 ]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입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말이지만 정부 내에서조차 비정상적인 일이 종종 벌어진다. 17일로 예정됐다가 불과 하루 전에 돌연 연기된 규제개혁장관회의만 해도 그렇다.
당초 이 회의는 박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규제개혁을 직접 챙기겠다고 하면서 마련된 자리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이니 만큼 내각과 청와대 주요 참모들이 총출동할 예정이었다. 일정은 이미 1주일 전에 언론에 공개됐고, 총리실은 전날 오후 3시 기자들을 대상으로 규제개선 대책 브리핑까지 마쳤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청와대에서 돌연 회의 연기 통보가 내려갔다. 한 달 넘게 회의를 준비해온 총리실과 관련 부처는 이른바 ‘멘붕’ 상태였다. 일부에선 ‘박 대통령이 보고 내용을 퇴짜 놨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나돌았다. 더욱 황당한 건 장관들이었다. 장관들 대부분은 갑자기 회의가 취소된 통에 17일 하루를 특별한 일정 없이 보냈고, 몇몇 장관들은 회의 연기 사실조차 전달받지 못했다.
이날 회의 연기는 박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수요자와 함께하는 회의로 바꾸자는 게 박 대통령 생각이었고, 이를 뒤늦게 눈치챈 청와대 참모진이 허겁지겁 회의 연기를 결정하는 사이 해당 부처는 이런 사실조차 모른 채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 때도 그랬다. 발표 형식을 놓고 막판에 청와대가 정무적 판단을 시작하면서, 정책을 생산했던 기획재정부는 철저히 소외된 채 눈치만 봐야 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한 관료는 “청와대와 내각 간 유기적인 소통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푸념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약청강내(弱靑强內·작은 청와대와 강한 내각)’를 내세웠다. 청와대는 내각이 잘 움직이도록 지원사격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전형적인 ‘강청약내(强靑弱內)’로 돌아갔다. 내각은 청와대 지시만 바라보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청와대와 정부부터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정종태 정치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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