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병욱 정치부 기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있게 될 한·미·일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오늘 오후 외교부에서 발표 있을 것입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21일 오전 춘추관을 찾아 브리핑한 내용입니다. 브리핑만 놓고 보면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외교부에서 발표한다는 건데, 이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언론들은 ‘한·미·일 정상회담, 헤이그에서 개최’라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민 대변인의 발언 중 ‘헤이그에서 있게 될 한·미·일 정상회담’이라는 표현 자체가 정상회담 개최를 전제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민 대변인의 브리핑이 본의아니게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를 인정하는 꼴이 되자 청와대 인사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민 대변인의 브리핑이 있기 약 30분전에도 비슷한 백브리핑이 있었습니다. 기자실을 찾은 청와대 관계자가 “한·미·일 정상회담 관련 청와대 입장은 언제 바뀌나”라는 질문에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고 답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의 입장은 ‘한·미·일 정상회담과 관련 발표할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의도치않게 조만간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 발표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 것이죠.
이날 청와대에는 브리핑과 관련 다른 해프닝도 일어났습니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박 대통령의 네덜란드 및 독일 순방 일정을 브리핑하면서 구체적인 장소까지 공개한 것입니다. 통상 대통령이 방문할 장소는 경호를 위해 미리 공개하지 않는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주 수석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보도를 유예해달라”는 ‘엠바고’(보도유예) 요청도 없이 브리핑을 했습니다. 브리핑 이후 30분이 지나서야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이 자세하게 공개되면 안된다는 내부 문제제기가 나왔고,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그때부터 부랴부랴 언론사에 보도자제를 요청했습니다. 그 사이 일부 언론사는 박 대통령의 순방 일정을 자세하게 보도했고, 뒤늦게 기사를 수정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통령경호실에서 당황했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이날 주 수석의 브리핑이 너무 앞서나갔다면, 20일에는 너무 뒤쳐진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주 수석은 20일 오후 6시경 갑자기 춘추관을 찾아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이보다 2시간 전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미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공개했다는 것입니다. 통상 양국간 정상회담은 당사자 국가들이 동시에 발표하는 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먼저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고, 이 내용은 외신을 통해 역으로 국내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2시간이 지나서야 청와대가 공식 발표를 한 것입니다.
브리핑 시기나 형식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최근 청와대가 외교 관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전 박 대통령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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