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스마트폰 이제 방수까지 된다니…"목욕 중이어서…" 핑계 안 통하겠네

입력 2014-03-31 21:01   수정 2014-04-01 03:44

모바일 디스토피아(dystopia)…모바일 기기 때문에 슬픈 우리

우리 회식 단골메뉴는 '스마트폰 전골'…빈 냄비에 휴드폰 넣어야 회식 시작!

'모바일 오피스'가 웬 말이냐
사내 인트라 시스템 연동에 휴가지도 장소만 바꾼 일터 돼

기계는 '스마트' 사람은 '바보'
스마트폰 의존에 기억력 저하…어머니 번호도 스팸 등록할 뻔



[ 전설리/김병근/전예진/황정수/박한신 기자 ]
지난 2월 말 삼성전자가 신형 스마트폰 갤럭시S5를 공개했을 때 김 과장은 한숨부터 나왔다. 3년마다 휴대폰 구입비를 지원해주는 회사에서 올해는 갤럭시S5만 지원하겠다고 공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숨? 기대보다 스펙이 실망스러워서? 아니다. 방수 기능 때문이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유일한 핑곗거리가 ‘샤워 중’이었는데 이제 그것조차 용납 안 되는 세상이 왔네요. ‘자네 스마트폰은 방수 안 되나’ 그러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성역(욕실)마저 점령당한 것이죠. 갤럭시S5 사지 말라고요? 앞으로 나오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방수 기능을 탑재하지 않겠습니까?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질수록 24시간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모바일 디스토피아가 오는 겁니다.”

○“스마트 워크=24시간 근무 중”

스마트폰 대중화로 기업들이 앞다퉈 ‘모바일 오피스’ ‘스마트 워크’ 시스템을 도입하자 24시간 업무에 시달리는 고통을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A기업에 근무하는 유 과장은 올해 초 지난해 못 쓴 연차를 모아 겨울 휴가를 떠났다. 휴가지로 가는 비행기 안. 아내가 신신당부했다. “휴가지에선 절대 일하지 말기, 약속해.” 유 과장이 평소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해와서다.

하지만 유 과장은 휴가 중에도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가를 떠난 줄 모르는 해외지사 해외고객들이 긴급 메일을 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2년 전 정비한 사내 인트라 시스템은 스마트폰과 연계돼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전 사원이 열람할 수 있다. 진행 상황이 더디면 상사가 바로 확인 가능하다.

관광지에서도, 식사 중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유 과장을 보다 못한 아내가 결국 짜증을 냈다. “스마트폰을 끄지 않으면 휴가고 뭐고 당장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어쩔 수 없이 남은 휴가 기간엔 아내가 자리를 비운 틈에만 스마트폰을 확인했습니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인데 이해를 안 해주니 섭섭하긴 합니다. 좋은 남편, 아빠 되기 정말 힘드네요.”

○엄숙한 장례식장에서도 ‘카톡 카톡’

B기업에서 일하는 이 대리는 최근 친척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연차를 냈다. 촌수가 제법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 장례식장에만 잠시 들르려 했지만 사람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상주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대리는 장례식장에서도 회사로부터 오는 전화와 카카오톡 메시지에 시달려야 했다. 깊은 산 속에 있는 장지에서도 스마트폰은 어김없이 울렸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 때문에 장례식에 집중하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최근 참석한 결혼식에서도 하객 대부분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더라고요.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병원에 들러서도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걱정하기보다 스마트폰으로 인증 샷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바쁘고요. 스마트폰 때문에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스마트폰 중독을 막아라

C기업에 근무하는 최 부장은 부하 직원들이 못마땅하다. 회의 중에도, 점심식사를 할 때도, 회식 자리에서도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업무 중에도 계속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직원들을 보며 “과연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세대 차이가 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젊은 직원들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네이버 밴드에 팀 밴드를 만들어 운영했다.

처음엔 어느 정도 호응이 있었다. 대화도 통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댓글이 줄었다. 먼저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밴드 알람이 울렸다. 반가운 마음으로 접속한 최 부장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본인을 욕하는 내용이 올라왔던 것. 직원이 다른 밴드로 착각하고 최 부장이 만든 팀 밴드에 게시물을 올린 것이다. 최 부장은 그 이후로 업무 중은 물론 회의 점심식사 회식 그 어느 때에도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딴청을 피우지 못하도록 스마트폰 금지령을 내렸다.

D기업에서 일하는 김 과장의 팀은 최근 회식 때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식당에 요청해 빈 냄비를 하나 받은 뒤 여기에 스마트폰을 넣는 것이다. 팀원들이 각자 스마트폰에만 빠져 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처음엔 불편했어요. 혹 전화나 메시지가 오지 않았나, 내가 올린 게시물에 누가 댓글을 달지 않았을까 궁금해서 못 참겠더라고요. 하지만 점차 스마트폰이 없는 분위기에 익숙해졌어요. 다른 직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들이 늘었습니다. 익숙해지니 아날로그 회식이 더 좋더라고요.”

○내 비서 스마트폰? 기억력 나빠진다

E기업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스마트폰에 모든 연락처와 일정, 메모가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자료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저장해두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없어서는 안 되는 비서다. 출근할 때 지갑은 놓고 와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지만 스마트폰을 두고 오면 반드시 가지러 가야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스마트폰에 의존하다 보니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가족과 친한 친구 전화번호쯤은 외웠는데 언젠가부터 기억나지 않았다. 지난달 스마트폰이 고장 나 며칠간 임대폰으로 버티던 박 대리는 지나친 스마트폰 의존도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 스마트폰에 두뇌 회전에 좋다는 퀴즈 낱말 맞히기 등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설치했어요. 스마트폰으로 퇴화한 기억력을 살리기 위해 다시 스마트폰에 의존하다니 아이러니컬하죠.”

전설리/김병근/전예진/황정수/박한신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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