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많다고 비판 받으면 누가 책임경영 하겠나
[ 이태명 기자 ]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중견기업 K회장은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 1980년대 후반 창업했다. 20여년간 공을 들인 끝에 계열사 두 곳을 둔 기업으로 키운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회사 경영 외에 중소기업 관련 단체 일에도 열심이다. 그는 2012년까지 10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았다.
그런데 K회장은 작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봉을 4억원 정도로 낮췄다. 경영실적이 나빴던 건 아니다. K회장이 스스로 연봉을 낮춘 건 작년 4월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기업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이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올해 처음 시행된 ‘상장사 등기임원 연봉공개’ 후폭풍이 거세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2일 서울 여의도에서 ‘등기임원 연봉공개 논란 속 폄하된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먼저 전 교수는 “연봉공개를 둘러싼 현 상황은 경영성과와 상관없이 보수의 많고 적음만 논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괄적 연봉공개를 통해 ‘성과 없이 과도한 보수를 받는다’는 식의 여론몰이는 반기업 정서만 부추길 뿐”이라고 꼬집었다. 연봉공개의 취지가 왜곡됐다는 주장도 했다.
전 교수는 “기업 임원의 연봉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인 동시에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며 “연봉이 많다고 비판을 받으면 어떤 최고경영자(CEO)가 책임경영을 하려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할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CEO의 도덕적 해이를 견제해야 한다는 당초 취지에 맞게 적자를 낸 상장사에 한해 등기임원 보수를 공개하자는 얘기다.
최 교수는 CEO와 직원 평균 연봉을 비교하는 논리의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CEO와 직원 연봉 격차가 크다는 지적은 어느 사회나 존재한다”며 “미국 S&P500지수에 속하는 327개 기업 CEO들의 평균 연봉은 직원 평균 연봉의 354배에 달하고, 월마트 CEO 연봉은 직원 평균의 1034배나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영성과가 좋지 않은 경영인이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는 건 문제이지만, 좋은 실적을 올려 세금을 많이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영인은 그에 걸맞은 급여를 보상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그는 “등기임원 보수는 경영성과, 경영책임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연봉의 적정 수준에 대한 정밀한 검토 없이 임원 보수가 직원의 몇 배, 농촌 근로자의 몇 배라는 식의 언어유희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각에선 연봉공개 범위를 비등기이사로 확대하자고 하고 보수 상한선을 정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는 정당성도 없고 지나치게 즉흥적인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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