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나선 중국 정부
정부가 중국 경제동향을 주시, 시장불안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중국은 최근 실물지표 둔화와 회사채 디폴트 등 금융시장 신용 리스크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이라면서 “중국 경제 동향을 예의주시해 발생 가능한 시장불안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 4월4일 한국경제신문
심상찮은 중국 경제
중국 경제가 심상찮다. 성장률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으며 금융시스템도 불안하다. 줄곧 오르던 위안화 가치 또한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다. 일각에선 금융위기를 겪었던 미국의 전철을 뒤따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승승장구하던 중국에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중국의 성장률은 몇 해 전만 해도 10%를 넘나들었지만 이젠 7%대로 떨어졌다. 7%대 성장이 벌써 3년째다. 올해 정부가 잡은 목표치가 7.5%이지만 이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구심마저 든다.
성장률은 급속히 떨어지는데 금융시장은 불안하다. 금융감독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져 자칫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2005년 이후 미 달러 대비 35%가량 뛰었던 위안화 가치는 올 들어 3% 정도 떨어졌다. 현 부총리가 “중국 경제 전망을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신중하게 상황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힌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진국 함정과 정부의 개혁정책이 원인
중국 경제의 심상찮은 흐름은 크게 △중국 경제 규모가 이제 과거처럼 고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 △중국 정부가 경제의 체질개선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먼저 중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은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국민소득이 일정 단계에 이른 중진국 수준에 접어들면서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중진국 함정은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임금이 오르고 땅값이 뛰면서 경제가 ‘고(高)비용·저(低)효율’ 구조로 바뀔 때 나타난다. 이런 함정을 벗어나려면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인데 중국 경제의 생산성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둘째는 중국 정부의 정책 전환이다. 지난해 3월 출범한 시진핑 정부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두 가지의 대담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성장전략의 전환’과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 확대’가 그것이다.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체질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이다. 정책의 키는 경제를 담당하는 리커창 총리가 쥐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는 ‘투자, 수출, 소비’라는 마차가 이끈다. 이가운데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쌍두마차는 투자와 수출이었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투자는 비효율이 쌓이기 시작했고 수출은 외국 경제 의존도를 높여왔다. 그래서 꺼내 든 경제발전 승부수가 바로 내수시장 확대다. 성장전략의 전환은 수출과 투자가 주도하던 초(超)고도 성장구조를 민간 소비 등 내수가 이끄는 안정적 성장구조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민간 소비가 늘어나려면 소득분배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국민소득에서 투자를 담당하는 기업보다 소비를 담당하는 가계의 소득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법정 최저임금을 지난 4년간 매년 14%씩 인상하는 등 국민소득 분배 가운데 가계와 임금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이런 정책은 그동안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던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중국 기업들을 해외로 내쫓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 생산비용이 치솟음에 따라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옮기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삼성전자가 중국 휴대폰과 PC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가전 공장 이전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생산비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시장이 자원배분을 결정토록 한다는 결의는 지난해 11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이뤄졌다. 중국은 1990년대 들어 대부분의 상품가격을 자유화한 바 있다. 그렇지만 국유기업의 비중은 여전히 높고, 경쟁력이 없더라도 정치적으로 연명시킨 기업들이 적지 않았으며, 금융부문의 리스크는 국유은행 시스템이라는 큰 틀안에 감춰왔다. 리커창 총리가 올초 “경제를 시장화하겠다”고 선언한 건 시장을 통해 경쟁과 리스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지난 3월 태양광업체인 차오리솔라가 중국 본토 회사채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차오리솔라의 파산은 경쟁에서 탈락한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정부의 신호였다. 중국 정부는 이제 금융 부문에서도 디폴트가 나올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정부는 손을 뗄 테니 리스크를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다. 지난달 하순 우리나라의 저축은행에 해당하는 장쑤성 서양(射陽)농촌상업은행에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벌어진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성장전략의 전환’처럼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 확대’도 예상되는 부작용이 만만찮다. 13조~36조위안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7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그림자 금융의 불안은 신용시스템 전반을 흔들고 있다. 이미 몇 차례 신용경색 사태가 일어났으며,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도 크게 높아졌다. 심지어 중국발 금융위기론까지 회자된다.
중국발 위기 발생할까?
중국 정부는 지난달 17일 위안화 환율 변동폭을 확대했다. 기존엔 위안·달러 환율이 하루에 인민은행이 고시한 환율 대비 상하 1% 내에서 거래될 수 있었으나 이를 상하 2%로 늘린 것이다. 2012년 위안화 환율 변동폭을 1%로 확대한 지 2년 만이다. 변동폭 확대 이후 위안화 환율은 예상과 달리 상승세(위안화 가치 하락)가 이어지고 있다. 위안화 약세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성장세 둔화의 충격을 완화하고, 일방적인 위안화 강세에 베팅하는 외국의 핫머니(단기 투기자금) 투기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2월 수출 부진으로 23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그러나 위안화 약세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시티그룹, 노무라,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최근 잇따라 위안화 약세로 중국으로 유입되는 핫머니 흐름에 갑작스러운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외국인 투자금 이탈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환차손을 입게 된다. 시티그룹은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근거로 2009년 이후 중국에 유입된 달러 차입금만 6200억달러(약 655조원) 정도이고, 이가운데 80%의 만기가 1년 미만이라고 밝혔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기업들의 파산은 아직까진 민영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과연 국유기업의 디폴트마저 허용할 것이냐가 금융 불안의 향방과 중국 정부의 개혁 의지를 가늠케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경제발전 전략 전환과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커창 총리의 ‘시장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 사례는 리커창 편이 아니다.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발생한 주요 위기는 대부분 시장화와 연결돼 있다. 중국 경제의 향방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게 세계가 중국을 주시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