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일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CJ를 정조준하고 있다. 직접 거명은 하지 않았지만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문화융성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영화산업에서 계열사를 밀어주는 관행이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0일 열린 규제개혁 민관합동회의에서도 “제작과 상영을 한군데서 하게 되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며 수직계열화에 따른 불공정거래 관행을 강하게 지적했다.
발언의 방점은 ‘불공정거래’가 아니라 ‘수직계열화’에 찍혀 있다. CJ는 배급사(CJ E&M)와 극장사(CJ CGV)를 양대축으로 제작-투자-배급-상영의 영화 공급망을 구축한 기업이다. 수직계열화가 맞다.
하지만 이것은 전략적 선택의 영역이다.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선택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할 전략이다. 기업(그룹) 내부의 아이디어 콘텐츠 기술을 집약하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윤제균 감독의 토로 적절했나
그렇다면 CJ는 직접 배급영화를 계열 극장에 몰아준 것일까. 영화진흥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kobis.or.kr)는 매일 밤 12시에 영화별 스크린·좌석 점유율을 일별·주별로 공개하고 있다. 복합상영관들이 어떤 영화를 얼마나 걸고 있는지, 어떤 영화가 흥행을 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관객이 들지 않는 계열 영화를 많이 걸어주면 상장사인 CG CGV 투자자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해운대>를 연출한 스타감독에서 제작자로 변신한 윤제균 JK필름 대표는 지난 민관합동회의에서 “예전엔 비흥행 영화라고 하더라도 최소 1주일간 기본상영 시간이 지켜졌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스스로 감독을 맡아 CJ 역사상 가장 큰 투자 손실이 발생한 <마이웨이>가 얼마나 빨리 CGV에서 간판을 내렸는지는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영화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완전경쟁 시장이다. 월트 디즈니가 <존 카터>라는 영화 하나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고도 버티는 이유는 테마파크 캐릭터 미디어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의 힘 덕분이다.
경쟁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한국에는 매년 200여편의 영화가 새로 제작되고 있다. 그중에 50여개는 배급사를 만나지 못해 상영되지 않는다. 이들 영화의 제작사는 CJ 롯데 같은 대형 배급사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시나리오를 다 걸 수는 없다. 정부가 강제할 일도 아니다. 영화사의 존폐는 흥행이 결정한다. 영화인들의 창의력과 스태프의 기술력을 총동원하더라도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영화산업의 선진화를 위해선 오히려 전략적 퇴화가 필요하다. 영화인들 사이에선 “돈은 못 벌어도 좋으니 죽어도 영화는 만들어야겠다”는 열정이 넘쳐난다. 그게 나중에 창조경제의 힘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아이디어나 기술도 경쟁이라는 시장경제원리를 피해갈 수는 없다. 옥석을 가리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물론 불공정거래 조사와 제재는 정부(공정거래위원회)의 통상적인 업무다. 특별할 게 없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공정거래법에 따라 크고 작은 처벌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이 원하는 창조경제가 ‘도토리들’의 향연은 아닐 것이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