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는 ‘초록빛 에메랄드의 나라’로 불린다. 따뜻한 멕시코 만류 덕분에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아 1년 내내 녹색 초원을 볼 수 있다. 국토의 75%가 목초지다. 1990년대 눈부신 경제성장도 ‘녹색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기원전 9세기부터 유럽에서 이주해온 켈트족이 살았다. 그러나 8세기 바이킹의 침입과 12세기 영국의 침략 이후 고난의 시절을 보내야 했다. 1801년 영국에 합병된 뒤로는 더 그랬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무장 투쟁 때문에 아일랜드 역사는 곧잘 피의 역사로 기억됐다.
아일랜드의 또 다른 상징어는 배고픔이었다. 1845년부터 7년간 이어진 대기근으로 당시 800만명 중 200만명이 굶어죽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이민선을 탄 사람도 200만명이었다. 이때 사랑하는 가족, 친지, 연인과 헤어지며 부둥켜안고 울면서 부른 노래가 ‘대니 보이’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얼뜨기들이 세계 곳곳에서 기적을 일궜다. 미국 대통령 43명 중 22명이 아일랜드계 혈통이다. 아일랜드 총리를 두 번 지낸 개럿 피츠제럴드와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아일랜드인들의 우상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윌리엄 예이츠와 셰이머스 히니,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와 조지 버나드 쇼도 그렇다.
그저께 영국을 처음 국빈방문한 아일랜드 대통령과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만찬 장면이 화제다. 이 자리에는 IRA 사령관으로 영국과 싸웠던 장관도 참석했다. IRA 테러로 사촌을 잃은 여왕은 그 앞에서 화해의 건배를 제의했고 그는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이날 여왕은 아일랜드 상징색인 녹색 에메랄드 왕관을 쓰고 나왔다.
외신들이 역사적 장면이라며 대서특필할 만했다. 다만 그 배경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점까지 알렸다면 더 좋았을 법했다. 그건 바로 시장의 힘이다. 지금 영국에는 아일랜드인이 창업한 기업이 5만6000개나 있다.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아일랜드에 5조5000억원을 지원했다. 경제적 협력이 정치적 화해의 지렛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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